After The Ending Credit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영화가 계속된다면 그들의 삶은 행복할까?
당신이 사랑이라 믿은 잔혹한 진실
글·사진 감성현
# 상처_01
죽음과도 같은 날들이 흐릅니다.
쉽게 잠들지도 못하지만, 깨어 있는 동안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지내야 합니다.
숨조차 쉽게 내쉬어지지 않습니다.
억지로 숨 한번 삼키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봅니다.
여전히 그녀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며칠 만에 울린 전화는 녀석입니다.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야. 방금 일어나서 그래.”
“아닌데. 아픈 목소린데. 여자친군 뭐래? 걱정 안 해줘?”
“……”
“싸웠어?”
“아니.”
“……”
“……”
“싸웠네. 싸웠어.”
녀석이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그래, 싸웠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라며 한바탕 쏘아붙이려다 기운이 없어 그냥 맙니다.
“언제 싸웠는데?”
“너 데려다 준 날.”
“누굴? 뭐 해줬다고?”
“너. 술 취해서 울고불고 한 날 있잖아. 포장마차에서.”
“내가? 그랬어? 그래서 네가 날 데려다 줬다고? 너 왔었어?”
“기억 못 하네. 못해.”
“아침에 눈 떠보니까 내 방 침대이긴 했는데, 귀소본능이 뛰어난 줄로만 알았지.”
“나 도대체 왜 그 고생을 했니?”
“아니야, 진짜로 그날 너 안 만난 거 같아.”
어이가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싸움이라도 붙을 것만 같습니다.
“나 전화 들어온다. 나중에 통화하자.”
적당히 둘러대고 서둘러 녀석과의 전화를 끊습니다.
잠시, 사람냄새가 풍기던 이 공간에 또 다시 죽음과 같은 적막이 내립니다.
무거운 우울함이 깊은 곳에서 밀려옵니다.
아무래도 오늘도 마셔야겠습니다.
# 상처_02
한 잔. 콧등이 시립니다.
한 잔. 눈가가 젖습니다.
한 잔. 목이 잠깁니다.
잔을 채웁니다.
잔을 비웁니다.
그러자 그녀로 채워지는 술잔 안에 얼굴을 내밉니다.
한 잔. 탁자 위에 내 이름을 씁니다.
한 잔. 그 이름 옆에 사랑한다고 씁니다.
한 잔. 그리고 그녀 이름을 쓰다가 굳어버립니다.
뭐가 그리 속상하고 슬픈지, 가슴이 울려고 합니다.
울게 하고 싶지 않아서 천천히 내 이름을 지웁니다.
쓰다만 그녀 이름을 지웁니다.
하지만 차마, 사랑한다는 말은 지우지 못하고 또 굳어버립니다.
한 잔. 내 사랑이 변하지 않았기에,
한 잔. 그녀의 사랑이 변하는 줄 몰랐습니다.
한 잔. 그녀가 밉습니다.
그녀가 죽도록 밉습니다.
# 상처_03
AM 02:52
비가…… 참 아프게 온다.
……
PM 09:42
괜찮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
……
PM 03:44
이젠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겠어.
배고프다.
……
PM 10:45
술을 그만 마셔야 할까 봐.
뭔가 알고 있는데,
막상 떠올리려 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
AM 03:21
이상하지?
졸리지 않아.
……
AM 04:44
사랑한다 말할 수 있던 내가
너무 그립다.
그렇게 수많은 날들이, 대답 없는 문자와 함께 의미 없이 흐른 뒤,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아주 짧고 담담한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 만날까?
스토리디렉터 감성현의 신작 | <19 씩씩하게 아픈 열아홉>
육체적 고통을 통한 정신적 성장을 다룬 이야기.
"어른도 아니도 아닌, 열아홉.
달리기를 좋아하던 난, 열아홉 살이 되던 해.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었다."
기억할게.
내 첫 기억.
내 기억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