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중동전쟁 - 나세르 민족주의가 승리하다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1956년 수에즈 위기(Suez Crisis)로도 불리는 2차 중동전쟁이 발생했다. 이 전쟁은 냉전의 양 축인 미국과 소련이 중동문제에 개입할 명분을 제공하여 팔레스타인을 국제 분쟁의 각축장으로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에즈 운하는 프랑스의 외교관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의 제안에 따라 시작되어 1869년 11월 17일 개통되었다. 그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에 운하를 건설하여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항로를 단축하자고 제안했다. 이전의 희망봉 우회 항로를 대체하여 세계 해운의 핵심 통로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시공은 프랑스와 이집트의 합작회사인 수에즈 운하 회사(Suez Canal Company)가 맡았으며,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의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운하의 중요성과 큰 투자만큼이나 운하 건설에 참여한 유럽 열강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갔다. 영국은 대지주로서 수에즈 운하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이집트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다른 참여국들도 자신들의 지분을 주장하며 운하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1956년 7월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를 이집트 소유로 국유화한다고 선언했다. 운하 건설과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관련 국가들은 크게 당황하고 분개했다.


나세르 대통령은 확고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서방 열강이 자국 영토에 운하를 건설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겨가는 것을 제국주의적 수탈 행위로 간주했다. 더욱이 열강들은 수에즈 운하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 이집트의 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또한 열강들이 자신이 주도하는 국가 개발 계획을 외면하고 경제적 독립을 방해하여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에 더욱 의존하게 유도하는 식민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세르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는 자국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 행위라고 크게 반발했다. 이스라엘은 적대 관계인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여 직접 운영하며 자국 선박의 홍해 진입을 차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나세르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과 함께 이스라엘 선박이 수에즈 운하로 진입하는 길목인 티란 해협을 봉쇄한다고 선언했다.


1956년 10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대표는 파리 근교 세브르에서 비밀리에 회동하고 군대를 동원해 이집트를 공격하여 수에즈 운하 운영권을 회복하고, 종국에는 나세르 대통령을 축출하자고 공모했다.


같은 해 10월 29일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와 접해있는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를 점령했다. 11월 5일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공수부대가 수에즈 운하를 포위했다.


소련의 니키타 후르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나세르 대통령의 반서방 민족주의를 옹호해 온 인물로 특히 나세르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던 제3세계 국가의 비동맹 외교를 지지하고 있었다. 후르시초프 서기장은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은 정당한 주권 행사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연합군이 수에즈에서 즉각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련은 연합군이 수에즈에서 즉시 철수하지 않으면 군사적 개입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소련의 즉각적인 개입에 미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은 수에즈 운하 사건이 중동에 대한 소련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빌미가 될 것에 우려했다. 11월 6일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주장하고, 수에즈 운하 문제는 유엔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영국이 수에즈에서 즉각 철수하지 않으면 영국이 가지고 있는 미국의 국채를 헐값에 매각해 버리겠다고 경고하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11월 6일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집트와 휴전에 합의하고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관리권을 인정했다.


같은 해 유엔 총회는 캐나다 피어슨 외교장관의 제안으로 유엔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유지군(UNEF, United Nations Emergency Force)을 창설하여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에 주둔시켰다. UNEF는 수에즈 운하에 배치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군의 철수를 감시하고 지역 안정화와 분쟁 재발 예방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2차 중동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국제적 위신이 하락하고 유럽 강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성공하고 아랍 민족주의의 리더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인했다.


나세르 대통령은 중동 아랍 민족주의 운동의 핵심 목표 중의 하나가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의 해방임을 강조하고, 가자지구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요르단의 독주를 억제해 갔다.


이스라엘은 1차 중동전쟁에 이어 2차 중동전쟁에서도 아랍 국가와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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