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1950년 4월 24일 요르단 국왕 압둘라 1세는 서안지구를 요르단에 합병한다고 선언했다.
압둘라 1세 국왕은 멕마흔-후세인 서한의 당사자인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의 둘째 아들로, 1차 세계 대전 당시 아버지 후세인과 함께 오스만제국에 저항한 반란 전쟁에 참여하며 영국을 지원한 인물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2차 세계 대전 직후 영국의 지원으로 요르단 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 이어 선지자 무함마드의 혈통을 잇는 하심 가문의 후손임에 따라 이슬람의 성지 예루살렘을 수호하고 그 땅의 아랍인을 거두어야 한다는 종교적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그의 서안지구 합병 계획은 단지 종교적 이유만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군사력을 보이며 팽창함에 따라 서안지구를 확보하여 이스라엘과의 완충지역을 만들어야 할 안보적 이유도 있었다. 또한 이미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팔레스타인을 발판으로 아랍 세계의 지도자를 꿈꾸는 이집트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놓치고 싶지 않은 정치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국왕은 예루살렘 구시가와 예리코, 베들레헴, 헤브론, 나블루스, 라말라 등 서안지구가 요르단 왕국의 일부임을 선언하고, 이 지역 주민들에게 요르단 시민권을 부여했다. 요르단의 인구는 3배 이상 증가했다.
영국, 미국, 이라크는 요르단의 서안지구 합병을 승인했다. 이들은 요르단의 합병이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독립에 대한 욕구를 잠재울 최선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제사회는 요르단의 합병 정책을 불법으로 간주했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랍 국가들도 요르단의 팔레스타인 합병 선언은 팔레스타인을 독식하겠다는 의도를 공식화한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후 중동 아랍 국가들의 권익과 분쟁을 조정할 목적으로 출범한 아랍연맹(League of Arab States)은 요르단이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등 당장의 혼란을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독립 국가를 수립할 때까지 신탁통치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요르단의 합병을 용인하기로 결정했다.
압둘라 1세 국왕의 속내는 한시적인 합병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서안지구를 영구히 합병하여 요르단의 국경을 이스라엘 국경까지 확대할 생각으로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을 추진했다. 이는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독립 국가 수립을 꿈꿔온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들의 비난과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1951년 7월 20일 예루살렘 알-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한 압둘라 1세 국왕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 무스타파 슈크리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손자 후세인 왕자(나중에 후세인 국왕으로 즉위)도 현장에 있었으나, 총알이 왕실 휘장을 맞고 튕겨 나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슈크리는 팔레스타인 독립을 방해하고 이스라엘과 협력하려 한 압둘라 국왕을 제거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 오스만제국의 제국주의에 항거했던 후세인 국왕은 또 다른 민족주의자의 손에 의해 오스만제국의 모습으로 쓰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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