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바로 다음 날,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아랍 국가는 연합군을 구성하여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신생국 이스라엘은 미처 전쟁을 대비하지 못한 탓에 전방위에서 몰아치는 아랍 연합군의 공세를 감당하기가 버거운 실정이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연합군이 내부적으로 분열하고 전략적으로도 혼선을 빚는 틈을 타 이스라엘은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전쟁을 주도한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과는 별개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점차 경쟁 관계로 변해갔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요르단의 독점을 우려하여 우선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요르단은 요르단강 서안에 군대를 주둔시켜 서안지구의 합병을 시도했다.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발판으로 아랍의 맹주로 부상하고자 했다. 요르단은 팔레스타인을 흡수하여 영토 확장과 아랍권 내에서의 종교적 영향력을 확대할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 전세를 뒤집으며 아랍 연합국을 제치고 오히려 영토를 확장했다.
1949년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시작으로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와 차례로 휴전했다. 10개월에 걸쳐 계속된 전쟁은 이스라엘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스라엘은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의 분할 안보다 훨씬 많은, 팔레스타인 전역의 78%를 점령했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압승으로 끝났다. 전쟁의 승리는 신생국 이스라엘이 국가 수립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대내외적으로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초에 이스라엘이 건국한 지역에서 살아왔거나,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지역에 거주해 온 아랍인들은 피난길에 올랐다. 아랍인 피난민은 75만 명에 달했다.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의 시작이었다. 아랍인들은 이 피난 행렬을 대재앙(나크바)이라 부른다.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대거 수용하고 시민권을 부여하며 자국민으로 흡수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서안지구와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요르단으로 합병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집트는 요르단의 이러한 구상을 반대하며 가자지구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전쟁은 아랍 국가들의 계획과는 달리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각하고 아랍인의 독립은 미궁으로 몰아넣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스라엘-아랍 국가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2차∼4차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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