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건국 - 불공평한 유엔 결의 181호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by 다두


1947년 유엔 총회는 결의안 제181호를 채택하고 팔레스타인 분할 안을 제시했다. 결의안은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의 위임통치를 종료하고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 아랍인 국가, 국제 관리지역(예루살렘)으로 분할하자는 것이었다. 결의안은 찬성 33개국, 반대 13개국, 기권 10개국으로 통과되었다.


일반적으로 유엔 총회 결의는 권고적 성격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압도적 찬성이나 만장일치로 채택된 경우, 국제관습법으로 발전할 수 있어 사실상 구속력을 갖는 경우가 없지 않다.


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Security Council Resolutions)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 유엔 헌장 제25조는 회원국은 안보리 결정을 수용하고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유엔 헌장 제7장의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결의는 제재, 무력 사용 등 강제 조치도 부가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강제력이 발동되는 경우는 드물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행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유엔의 분할 안을 적극 환영하고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아랍인들은 유엔의 분할 안이 공평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유엔 총회의 분할 안은 팔레스타인을 유대 국가 몫으로 55%, 아랍 국가 몫으로는 45%, 국제 관리 대상 예루살렘 지역으로 5%를 각각 배정한다는 것이었다.


아랍인들은 이 분배 안이 당시 유대인 60만 명, 아랍인 130만 명이라는 인구 비례에도 맞지 않고, 농지와 산업 기반의 대부분이 유대 국가 몫으로 편중되어 공정하지 않다며 수용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온 유대인이 당시 소유하고 있었던 토지는 팔레스타인 전체 면적의 7%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다시 또 분노하고 민병대를 조직하여 유엔 총회결의에 반대하는 무장 투쟁에 돌입했다. 민병대는 하가나 등 유대인 무장조직과 교전을 벌이며 민간인 피해가 늘어갔다.


아랍인의 반대와 격렬한 항거에도 불구하고 1948년 5월 14일 유대 지도자 다비드 벤구리온은 유엔 총회 결의 제181호를 인용하여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내각을 구성하고 초대 총리로 벤구리온을 선임하는 한편 지중해 남부 연안의 텔아비브를 수도로 정했다. 다윗 왕의 방패에서 따온 다윗의 별(Magen David)을 문양으로 국기를 제정했다. 다윗의 별은 유대교의 신앙을 상징하고 시온주의에 기반한 민족의 정체성과 국가 이념을 대변했다.


텔아비브 공항은 초대 총리의 이름을 따 벤구리온 국제공항이 되었다.


유엔 분할 안 수용을 거부한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의 전격적인 이스라엘 건국을 손 놓고 바라만 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불법적인 점령국이었다.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안은 결국 일방에만 적용된 팔레스타인 분쟁 안으로 변질되어, 뒤이은 중동전쟁의 원인을 제공하고 대규모 난민 등 인도적 문제를 양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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