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본다
1970년 9월 6일 PLO 내 급진 무장 세력 PFLP(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대원들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민항기 5대를 동시다발적으로 납치했다.
5대의 항공기는 프랑크 푸르트를 출발하여 뉴욕으로 향하던 TWA, 브라셀을 출발하여 뉴욕으로 향하던 Pan Am, 스위스 취리히를 이륙하여 뉴욕으로 향하던 스위스 항공, 암스테르담을 출발하여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향하던 이스라엘 항공, 런던을 출발하여 뉴욕으로 향하던 BOAC 등이었다.
무장대원들은 4대의 항공기를 납치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스라엘 항공기는 납치에 실패했다. 기내에 탑승하고 있던 이스라엘 사복경찰과 승객들이 납치범 1명을 사살하고 다른 1명을 제압하여 런던 히드로 공항에 무사히 착륙시켰다.
납치범들은 4대의 항공기 중 3대를 PLO 거점이 있는 요르단 자르카 근처 사막의 임시 활주로에 착륙시켰다. 이 활주로는 이전에 영국 공군이 사용한 ‘도슨스 필드’로서 버려진 것이었는데 PLO 무장 대원들이 이를 복구하여 ‘혁명공항’이라고 이름 붙이며 사용했다. Pan Am은 이집트의 카이로 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납치범들은 기내의 승객을 분류하여 미국, 이스라엘, 영국, 독일, 스위스 국적자만 인질로 잡고 나머지는 석방했다. 대원들은 인질 석방을 조건으로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 요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납치범들은 국제 언론을 초청하여 사막 한가운데에 억류된 인질들의 열악한 상황을 공개하며 협상을 압박했다. 미국, 영국, 스위스 등 관련 국가는 테러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외교적 원칙을 고수하며 협상을 거부했다. 그러나 인질들의 상황이 심각해짐에 따라 관련 국가들은 요르단과 국제기구를 내세운 간접협상을 추진했다.
요르단 군은 혁명공항 일대를 포위하고 주권을 위협하는 납치범들을 압박하며 인질 석방과 투항을 요구했다. 납치범들은 일부 여성과 아동들을 석방하고 남성들은 계속해서 억류하며 협상을 주도했다.
마침내 협상이 타결되었다. 관련국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90명을 석방했다. 인질범들은 역류 중인 인질 300여 명을 같은 시간에 석방했다. 납치범들은 인질들을 풀어준 뒤 4대의 항공기 모두를 폭파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3대의 대형 항공기가 동시에 폭파되는 장면은 국제 언론에 의해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언론은 항공기 납치를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한편 납치의 배경과 근본 원인 등을 상세히 보도하며 팔레스타인 문제의 복잡성을 조명했다.
이 사건은 PLO 무장세력의 존재를 전 세계에 강렬하게 각인시키고,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단순한 지역적 분쟁이 아니라 외교 안보 인권 문제 등이 복합된 국제적 이슈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ICAO(국제민간항공기구)와 각국은 항공기 납치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탑승객 검색, 항공기 내 보안 요원 배치, 납치 대응 행동 요령 등을 새롭게 규정하는 등 국제 항공 보안 기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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