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혁명을 한다
일 때문에 파리에서 몇 년을 살 수 있는 행운을 얻었었다. 이미 파리에서 살다 온 한 선배는 우리끼리만의 얘기라고 전제하면서, 세상에는 두 분류의 사람이 있는데, ‘파리에서 살아본 사람과 파리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며 나의 파리 생활을 과도하게 축하했다.
시켜서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한 나의 파리 생활의 목표는 루브르 박물관을 백번 가고, 오르세 미술관은 최소한 오십 번을 간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예술 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했지만 결국은 엉뚱한 일을 생업으로 삼아야 했고 그래서 가슴 한구석에 한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참에 그 한을 풀어볼 생각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관람객 출입구의 현대적 피라미드 지붕이 주는 생경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전시실은 주로 곰팡내 나는 고전을 담고 있어 다소 칙칙하고 침침한 분위기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고대 이집트, 그리스, 이슬람 등의 유적들이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박물관 밖의 화사한 파리 시내와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 사실이다.
반면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기차역이었던 건축물에 높은 유리 천장을 씌어 만든 것으로 건물 자체부터 현대적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도 인상주의 화풍의 그림들이라 화사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다. 특히 5층 시계탑 속 카페에서 새어 나오는 그윽한 에스프레소 향기는 미술관 밖 센 강변의 낭만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임기가 끝나 파리에서 쫓겨 올 때 맨 먼저 챙긴 이삿짐은 수북이 쌓인 루브르와 오르세의 입장권들이었다. 거기에는 고전을 보고 현대를 느끼며 적어둔 적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야기는 그림 속 뒤편에 숨어 아직도 숨 쉬고 있는 그때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이 그림이라는 수단을 통해 고민한 당대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들의 애잔한 이야기와 그들의 고민의 역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파리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 부류는 파리에 살면서도 루브르와 오르세를 몇 번밖에 안 간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최소 수십 번 이상 간 사람들이다.
또 다른 부류는 파리에 살지 않으면서도 루브르와 오르세를 보러 파리를 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파리에 살면서 루브르와 오르세를 수십 번 간 사람들 보다 위대하다. 일정상 모나리자만 보고 와도 그렇다.
<이 글의 저작권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나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