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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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말고 일어나서 배낭을 싸고 있는 아내에게 "언제 떠나는데..."라고 말해주는 남자. 언제고 떠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비몽이고 사몽간에 일어나 꾸머리를 챙기는 여인의 뒷모습까지 이해해 주는 계절. 숱한 고질병조차 너그럽게 받아주는 게 지금의 계절이라고, 감히 단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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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Gigliola Cinquetti-Non ho l'eta
오프닝 2
틈만 나면 떠나려는 아내에게 "왜"냐고 묻지 않고 지켜봐 주던 남자와 그의 여자를 우리는 잘 어울리는 부부라 불렀습니다. 천상의 인연이었죠. 그런 아내와 남편도 헤어지는 일이 있더군요. 하여 그들보다 더 슬펐던 우리들도 이젠 세월에 밥을 말아먹고 삽니다. 흘러간 옛 드라마의 대사처럼 모든 건 계절처럼 다시 오겠으나, 가을인양 들이닥치는 찬바람이 아직은 어색합니다.
시대의 아이콘이 분명했고 그래서 숱한 부러움과 경외를 받은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녀의 1974년 <인도의 노래>엔 꼭 이맘 때 우리같은 불편함이 담겨있습니다. (진실은 늘 불편한 것이라지요. 그녀의 메타포도 실은 매우 불안한 공감입니다)
"무슨 소리지?
- 그 여자가 울고 있어
- 괴롭지 않은가, 안 그래?
- 괴롭긴. 문둥병일 뿐이네, 가슴의 문둥병. "
마음에 박혀있다고 해서 반드시 상처이거나 행복이진 않습니다. 그냥 좀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예감일 뿐.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심장의 주홍글씨처럼 부끄러운 삶이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