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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붕괴 장현정

단편소설 붕괴 장현정

by 장현정 작가

붕괴


샤워기에서 물방울이 세차게 떨어진다. 샴푸를 한 웅큼 짜 머리에 문지르니 문지르는 방향만큼 머리가 빠졌다. 머리를 물로 빗으니, 물이 흐르는 자리마다 머리가 흘러내렸다. 그냥 좀 빠지나보다 싶었는데, 빗을 때마다 한 웅큼씩, 손으로 두피를 비비면 그 부위가 동그랗게 빠졌다.


식은땀인지 물이 흐르는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이마와 등이 젖어 있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봤다. 푸르른 숲속에 벌목하고 간 흔적처럼 듬성듬성 구멍 나 있는 머리가 보였다. 마치 총 맞은 흔적처럼 내 마음속에도 구멍이 나 차가운 바람이 드나들었다.


더듬더듬 타고 올라가듯 머리를 만졌다. 아스팔트의 표면처럼 거친 두피가 손끝을 스쳤다. 이제서야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실감이 났다. 쏟아지는 물줄기와 함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동그란 흔적이 수십 군데 나 있었다.


거울 속의 끔찍한 내 모습에 공포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렀다. “아닐 거야.”라는 현실 부정과 다르게 거울 속에 내 모습은 냉정한 현실이었다.


전기톱이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했다. 머리를 쥐어뜯으면 더 빠지는 걸 알면서도, 거울 속 내 모습이 끔찍해 머리에 손이 갔다. 우수수 빠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내 마음도 무너진다.


시작은 자의가 아니었다. 먹는 걸 좋아했고, 퇴근길에는 그날 받았던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삼키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파티션이 높아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는 책상 사이, 나는 숨이 막힐 듯 답답했다. 서류와 텀블러가 널브러진 자리들을 지나 시선은 자연스레 창밖으로 향했다.

구름과 내 위치가 뒤섞인 듯, 높이 솟은 빌딩이 답답한 마음을 더 짓눌렀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소음이 몰려왔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도서관 책상만한 자리마다 똑같은 유니폼과 헤드셋을 착용한 사람들이 바쁘게 말을 이어갔다.


따르릉—


“행복을 주는 쇼핑몰 상담원 이혜나입니다.”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요. 당신 혼자 일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봐요! 이게 부러져서 왔는데 왜 환불을 안 해주는 거예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헤드셋 너머로 키보드 타닥타닥— 소리가 섞였다.


“아니, 한참 기다려서 전화 걸었는데 또 기다리라고요?”


“죄송합니다.”


“빨리 확인해 줘요”


“CCTV 확인 결과 정상 제품이 나간 것으로…”


“그럼 내가 거짓말했다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그쪽 목소리만 들어도 살쪄 있을 것 같네. 됐어요! 나 참! 더러워서 끊을게요”


뚝—


나 이혜나는 콜센터 3년차다.

매일 같이 윽박지르고 시비 거는 고객들을 상대하며 하루를 버틴다.

일을 하는 건지, 욕을 들으려고 취직한 건지 모르겠다.

욕받이가 되는 대신 돈을 받는 기분이다.

오늘도 한 통화 한 통화가 전쟁이었다.


그때 팀장에게 한 통의 쪽지가 날라왔다.


‘잠깐 자리로 와.’


그 순간 내가 실수한 일이 있나 긴장이 되며 손에 땀이 찼다.


“팀장님”


“어 왔어?”


“무슨 일로…”


“네 이름으로 민원이 들어왔어.”


아까 통화했던 고객이었다. 메일로 너무 불친절해서 불쾌하다며 나 때문에 다시는 우리 쇼핑몰을 이용하기 싫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보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며, 손이 떨렸다. 떨리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잡으며 떨림을 감추려 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 말고 할 말이 없었다.


“잘 좀 하자 응? 요즘 실적도 많이 떨어지고 민원까지 들어오고 왜 이래”


“네 열심히 할게요.”


“그럼 평소엔 열심히 안 한거야?”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아까 받은 폭언 위에 팀장 목소리까지 겹치자, 떨리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울음을 삼킨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헤드셋을 쓰니, 머리에 돌덩이가 얹어진 듯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졌다. 고개와 함께 마음속도 검은 물감으로 가득 채워져 흘러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니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검은색 우산을 쓰고 어두침침한 빗길을 달렸다. 우산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옆에 서서 빨리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가 그치기는커녕 기다릴수록 더 많은 비가 쏟아졌다. 가로수가 심겨 있는 화단에는 세디센 빗방울로 흙이 푹푹 파이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가 회색 물결에 잠긴 듯했다.


”혜나야 우산 안 가져왔어? 같이 쓰고 갈래?


딱 봐도 양산만한 우산인데 같이 쓴다면 둘 다 어깨가 다 젖을 것 같았다.


“괜찮아. 곧 그치겠지. 먼저 가.”


동료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래 내일 봐.”


계속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보니.

출입문 앞엔 무릎까지 오는 치마에 흰 셔츠를 입은 여자와 나 단둘만 남았다.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았고, 근처에 가까운 편의점도 없었다.


옆에 있는 여자 핸드폰에 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오빠 다 왔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움직일 수도 없어”


곧이어 출입문 앞에 차 한 대가 와 스르륵 멈췄고, 여자는 차에 올라탔다.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는 혼자 남았다. 집으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에, 빗속을 뚫고 지하철로 뛰었다. 장맛비로 앞머리가 갈라질 정도로 머리가 젖어있었고, 옷도 모두 축축해서 양손으로 짜면 물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머리부터 신발까지 전부 젖어있었다. 물먹은 가방을 주섬주섬 뒤져 교통카드를 꺼내 찍었다.


삐빅— 잔액이 부족합니다.


오늘 참 하루 종일 되는 일이 없는 날인가 보다. 비 맞으며 겨우 지하철역까지 뛰어왔지만, 잔액이 없어 탈 수도 없었다. 지하철 밖에서 택시를 불렀다.


진작 택시를 부를걸 돈 몇 푼 아끼자고 비까지 잔뜩 맞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니 갑자기 설움이 밀려 올라왔다.


택시 타고 가는 내내 서러움에 계속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면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닦아도 닦아도 흘러내리는 눈물은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는 것 같았다. 소리내 엉엉 울고 싶었지만, 입 밖에 나오는 윽— 윽— 소리를 겨우 참아가며 집에 갔다.


“여기서 어디로 가면 돼요?“


”죄회전하면 돼요.“


”도착했습니다.“


”얼마 내면 될까요?“


”4,800원 이요.“


”조심히 가세요.“


겨우 기본요금밖에 안 되는 거리였는데, 푼돈 아끼자고 회사 출입문에서 한 시간이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던 내가 너무 불쌍했다. 연락해도 데리러 와줄 사람 하나 없기에 비 맞으며 지하철 개찰구까지 달려갔던 내 모습을 떠올리자, 멈췄던 눈물은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계산하고 내리니 핸드폰에 띠링 소리가 나며 문자가 왔다.


[행복 은행]

[Web 발신]

택시 4,800원

잔액 95,200원


잔액을 보니 아까 흘린 눈물은 눈 근처에 자국으로만 어른거리며 남아있고, 입에선 한숨 소리만 나왔다.


“하— 너무 힘들다.”


한숨을 쉬었다.


택시에서 내려 어두침침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3층에 도착했다.


도어락을 누르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환풍기 펜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창문조차 없는 사각형으로만 이루어진 방. 바람이 부는지도 비가 오는지도 느낄 수 없는 1평 남짓한 작은 방 안에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웠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


이대로 잠들어 버리고 눈을 뜨지 않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나에겐 그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또 지옥 같은 내일이 기다리기에 오늘 비 맞은 몸을 씻어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공용 사워실에 가 비를 씻어냈다. 오늘 더움과 눅눅함을 갓 씻어낸 산뜻한 물방울이 머리를 텀과 동시에 여기저기 퍼진다.


씻고 나니 몸은 개운했지만, 마음 한켠이 비워진 느낌이 들었다. 1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침대에 조용히 누워서 주변 사람들 SNS를 보며 부러워하거나, 작은 책상에 앉아 벽을 보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면 저녁은 금세 지나가고 다음 날 아침이 왔다.


SNS를 내리다 보니 떡볶이 영상이 끝없이 이어졌다. 빨간 양념이 끓어오를 때마다 내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매운 냄새가 내 방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배달 앱을 보며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내릴 때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설렘이 솟아올랐다.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점심에 제육볶음을 먹었지만, 밥 한 공기를 다 넣어 비비려 하자 그걸 다 먹냐는 주위의 핀잔이 날카롭게 꽂혀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목구멍으로 제대로 넘기지도 못한 채 식사를 마쳤다.


충분하게 먹지 못한 위는 하루 종일 밥을 더 달라며 조르며 꼬르륵 소리를 냈다. 그런 나에게 오늘 하루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걸 보상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를 달래며 떡볶이가 배달오는 45분을 기다렸다.


드디어 도착한 떡볶이. 비닐봉지를 뜯고 뚜껑을 여는 일 오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금세 기분 좋아지며 평생 일 안 하고 맛있는 것만 먹으며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눈앞에 드니 드라마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벽 앞에 작은 책상에 앉아 떡볶이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의자가 체중을 버티지 못하는지 움직일 때마다 삐꺽— 소리가 나는 의자였다. 떡볶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마다 오늘 받은 스트레스와 설움이 저 아래로 같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30분 만에 큰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는 떡볶이 한 통을 다 비웠다. 먹고 나니 걱정도 되고 허무함도 밀려왔지만, 오늘은 힘든 하루였기에 나를 위한 위로라 생각하니 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떡볶이를 다 먹고 핸드폰을 열었다.


[행복 은행]

[Web 발신]

떡볶이 14,000원

잔액 81,200원


다음 월급날까지 15일이나 남았고, 점심도 사 먹어야 하는데 점점 줄어드는 잔액을 보고 할 수 있는 건 한숨 쉬는 일밖에 없었다. 아무리 걱정하고 불안해 봤자 돈이 늘어나진 않을 테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허무하기만 했다.


이렇게 나는 매일 스트레스를 먹는 거로 풀었다. 그러다 보니 늘어만 가는 건 살이었다. 배달 음식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살들은 외출할 때마다 옷 위로 불룩 튀어나와 자기주장을 했다. 커다란 덩치로 인한 외부의 시선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여름 장마라 빗소리가 거칠어 우산을 뚫고 들어올까 겁이 날 정도였다. 우산 아래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내 몸의 절반밖에 안 되는 사람들. 어쩜 저렇게 날씬할까. 우산 양옆으로 삐져나온 어깨가 스치기라도 할까 자연스레 어깨를 움츠렸다.


출근길 내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걷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버텨야 하냐는 생각이 들어 가슴 한켠이 무겁게 짓눌렸다.


오랜만에 보는 회사 동생이 말을 걸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보다 키는 작지만, 체형은 비슷했다. 이제는 달라 보였다. 작은 체구에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길쭉길쭉해 보이는 팔다리. 한층 말라 보이는 몸이었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혜정아 왜이렇게 달라졌어?”


“살좀 많이 빠졌죠?”


자랑스럽다는 듯 양팔을 허리 위에 올린다.


“어떻게 뺀 거야?”


“저 이거 먹고 뺐어요. 20킬로그램이나”


약봉지를 달랑달랑 흔들었다. 투명한 약봉지에는 수십 개가 되는 알약이 들어있었다.


“20킬로그램?”


“네”


핸드폰에 알람 소리가 울린다.


“언니 만나서 반가웠어요. 저 가볼게요.”


동생과 헤어진 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손끝만 움직일 뿐, 정신은 엉뚱한 곳에 팔려 있었다.


팀장이 테이블을 치는 소리에 내 어깨가 움찔했다.


“혜나야”


나를 부르며 한숨을 내쉰다.


“네?”


“일 안 하니? 실적이 이게 뭐야?”


“그게…”


“위에서 지금 말이 많아. 이 친구 자리에 있냐고 묻잖아.”


“죄송합니다.”


정신을 어디 두고 일하냐며 자리에 찾아와 혼나기도 했다.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도 살이 빠지면 저 동생처럼 날씬해질까. 다이어트에 성공한 내 모습을 허공에 그려 보았다.


옷 가게 매장 안으로 들어가 사이즈 고민 마음껏 옷을 고를 수 있을까? 그동안 허리가 큰 원피스만 입고 다녔었는데. 예쁜 옷을 고를 생각에 가슴이 살짝 뛰었다. 핸드폰을 열었다. 카메라에 비친 내 얼굴은 위에서 바라보는데도 턱은 늘어져 두 겹이었다.


핸드폰 앨범엔 한껏 꾸민 친구들의 사진과 음식 사진만 가득했다. 그중 유일하게 내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나를, 친구가 애원하며 “한 장만 제발 찍자, 예쁘게 찍어줄게.” 해서 찍은 사진이었다. 살이 붙은 몸. 사진 찍는 게 어색해서 굳은 자세로 찍은 최악의 사진. 친구는 그 사진을 보더니 “봐, 잘 나왔잖아”라고 말했다. 이게 잘 나온 거라고? 내가 생각한 내 모습과 사진 속 나는 하늘과 땅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외 몇 장의 내 얼굴 사진은 결혼사진처럼 포토샵을 많이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살을 뺀다면 포토샵 한 내 얼굴이 될 수 있을까? 정말 내가 이렇게 변한다고? 생각만 해도 기뻤다. 그때만큼은 잠시 동안 배고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기쁨에 잠시 취해 있을 때,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오늘은 정말 많이 먹고 싶은 날이었다. 근처 김치찌개 집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한 공기 만으로는 부족해, 세 공기를 주문했다. 앉은 자리에서 김치찌개 2인분과 밥 세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다. 식사를 끝내고 카페로 향했다. 바닐라라테를 한 모금 마시며 오후 일을 위해 몸을 채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오늘도 귓가에 대고 하루 종일 화내는 고객들의 화를 견디느라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런 고객들을 상대하다 보니 다시 배가 고팠다. 눈꺼풀은 시계추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물먹은 양발을 질질 끌며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자, 반대편에 세 자리가 비어 있었다. 퇴근길, 이게 무슨 행운인가 싶어 가운데 앉았다. 다른 사람도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1분 정도 지났을까. 불편한 표정으로 옆 사람이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가버렸다. 커플이 좌석을 향해 다가왔다. 내 앞에 서자마자 여자는 그냥 가자며 남자에게 말했고 그렇게 여자와 남자도 내 앞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 올라왔다. 좁더라도 그냥 앉고 싶었을 뿐인데. 일 때문에 지쳐 있었고, 내 앞을 스쳐간 사람들의 인상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생긴 느낌이었다. 서러운 마음을 품으며 지하철을 타고 구석 한쪽에 서서 갔다.


오늘 저녁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어서 친구들은 만나 맛있는 걸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그렇게 우린 모여 3층에 있는 파스타집으로 향하며 계단을 올랐다. 그때, 올라가는 우리들을 보며 어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예쁘게 생겼네”라고 칭찬했다. 나도 포함된 걸까, 잠시 기분이 좋아지려는 순간, 지나가는 내게 누군가 말했다. “넌 살을 좀 빼야겠다” 내 몸만 평가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따라 내 발소리가 유난히 복도를 울리며 크게 들렸다. 착한 내면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면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내 마음속에 파문이 일었다.


모임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친구들은 내 모습을 보고 너 무슨 일 있냐며 왜 이렇게 넋을 놓고 있냐고 말했다.


“나 많이 뚱뚱하지?”


얼굴을 떨구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 정도면 귀여운 거지”


“나도 다 알고 있어 뚱뚱한 거”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친구들이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나는 알고 있다. 지나가다 들었던 그 말처럼, 나는 뚱뚱하다. 접시를 스치는 포크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컸다.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으니, 물컵에 있는 물이 갑자기 세차게 흔들렸다. 내 마음속에 파도가 일렁였다.


집에 도착해 오늘 만났던 회사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혜정아 뭐해?”


“저 지금 집 청소하고 있어요.”


화면 속 글자를 보면서, 손이 조금 떨렸다.


“많이 바빠?”


“그 정돈 아녜요”


“아까 말한 살 빠지는 약 어디서 지었는지 물어봐도 돼?”


“아 그거 때문에 연락했어요?”


“불편했다면 미안해”


“아뇨 소망병원이요. 제가 약도 보내줄게요.”


“진짜? 청소하느라 바빴을 텐데 고마워.”


“그거 먹으면 살 진짜 금방 빠져요 지금 39킬로그램이에요.”


“부럽다. 고마워 나중에 커피 한잔 살게.”


“괜찮아요. 커피 마시면 잠 못 자서.”


핸드폰 지도에 점 하나가 깜빡였다. 그 점은 나였다. 강남 성형외과 간판들이 반짝일 때마다, 내 몸이 하나씩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유리창들 속에서, 내가 가장 흐릿했다. 심호흡을 크게 세 번 하고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소망병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예약하셨나요?”


“9시 이혜나요”


“네 자리에 앉아 계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병원의 차가운 공기가 살에 닿았다. 전부 면봉 같은 여자들이었다. 나만 부피가 있었다. 여기서도 내가 제일 뚱뚱했다. 조금 기다리니 내 이름을 불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혜나 씨 몇 킬로그램이에요?”


“60킬로그램이요…”


“몇 킬로그램까지 빼고 싶어요?”


“40킬로그램이요”


“알겠습니다. 나가서 기다리세요”


그렇게 수십 가지가 처방된 처방전을 들고 1층에 있는 약국으로 향했다.


“50만 원 입니다.”


“네?”


“할부해 드릴까요?”


“아니요. 일시불로 결제해 주세요.”


카드 결제 음이 짧게 울렸다. 기계는 내 사정을 모른다.


집에 가는 길 지하철 좌석에 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나를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늘 결제한 50만 원을 12개월 할부로 바꾸는 일이었다. 월 4만 원이면 부담도 가지 않는 금액이니까 할부를 내며 한 달만 먹어보자는 마음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운동을 안 해도 되고 살이 빠진다는 거지? 마음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하루 세 번...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손끝이 저렸다. 이러다 내 몸이 무너질까. 두려움이 와르르 쏟아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무서웠다. 하루 종일 울리는 박동 소리에,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 심장박동 소리만으로 공포만 느끼다 두 시간 겨우 눈을 붙였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져가는 내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놀라서 내게 비법을 물어봤다. 아무도 내 머리카락이나 심장의 공포나 손끝 저림에는 관심이 없었다.


“혜나야 언제 이렇게 날씬해졌어?”


“그냥, 안 먹고 운동했지!”


“나는 퇴근하면 배고파서 안 먹기 힘들던데 아참, 저녁에 삼겹살 먹을래?”


“요즘 저녁 안 먹어서 미안”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몸무게는 줄어만 갔다. 오늘도 점심에 간단하게 토마토주스를 먹고 화장실을 갔다. 화장실 끝 칸에서 토하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심장이 쿵— 쿵— 뛰었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제발 아니길 바라며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


“혜정아 괜찮아?”


내 물음에도 토하는 소리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 좀 열어봐.”


문을 열자, 눈앞의 모습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묶었던 머리는 반쯤 풀려 헝클어져 있었고, 하얀 옷엔 토사물이 얼룩져 있었다.

나는 등을 두드려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냐며 재차 물었다.


화장실에선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만 울렸다. 사실 자신이 거식증이 있다며 내게 말했다. 이미 39킬로그램까지 뺐지만, 아직도 먹으면 예전 몸무게로 다시 돌아갈 것 같은 두렵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식사하는 자리까지 피하게 된다고 했다. 오늘도 회식인데 먹기 싫고 두렵다며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나는 조심스레 동생을 안아줬다.


분명 운동하고 적게 먹으면 살이 빠진다고 했는데, 운동을 한 날엔 자정만 되면 내 머릿속에 경쾌한 알람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먹어야 한단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 생각을 저버리지 못하고 자정의 알람 소리와 함께 냉장고로 향했다.


라면을 끓여 먹을 시간조차도 기다릴 수 없었다. 다급한 손은 냉장고 손잡이에서 자꾸 미끄러졌고, 마음은 초조하게 떨렸다. 밥통을 열어 통째로 솥을 꺼냈다. 김치 한 포기를 통에서 꺼내 손으로 찢어 김에 싸 입안에 집어넣었다.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못 먹는다는 생각에 쫓기듯 먹었다. 모든 걸 삼킨 후 까만 봉지에 후회를 토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체중계 앞에 서니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긴장된 마음으로 체중계에 발을 올리고 몸무게를 쟀더니 무려 3킬로그램이나 늘어 있었다.


이렇게 매일 강박을 가지며 몸무게를 재다보니 어느덧 음식은 어깨 위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그때부터 극도의 식이 제한을 하기 시작했다. 달걀 하나, 그것만으로 하루를 버텼다. 굶을수록, 체중계 위 숫자가 얼음처럼 서서히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는 기분을 묘하게 만족스러웠다.


마치 혼자 달리기 경주를 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서 출발 총성이 울리고, 끝없이 이어진 길을 달렸다. 한참을 달려도 끝은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나 빼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달리고 또 달렸다.


살을 빼면 내 바닥난 자존감도 조금은 살아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가졌다. 지금의 나는 목표가 있는 게 아니었다. 남들과 끝없이 비교하며, 그저 빼고 또 빼는 것뿐이었다. 만족감을 차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즐기지 못한 채, 혼자 힘차게 달리기만 했다. 그때부터였다. 내 다이어트가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한 건.


이즈음, 자꾸 슬픔이 몰려왔다.

출근길 바닥까지 내 기분은 떨어졌다.

높은 칸막이가 있는 자리에 앉자, 사람들과 벽을 쌓는 기분이 들었다.


따르릉


“행복을 주는 쇼핑몰 상담원 이혜나입니다.”


“물건이 고장 나서 왔잖아. 당장 가져가고 환불해 줘.”


“사진 찍어 보내주시면 검토 후에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야 너! 거기 어디야 내가 당장 찾아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


갑자기 속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고, 눈꺼풀 아래에서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숨이 막혀 오듯 코끝이 찡하고, 손끝까지 싸한 느낌이 번졌다.

‘왜 내가 이 소리를 들어야 하지?’라는 생각조차 흐려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목덜미까지 흘러내렸고, 눈앞의 책상과 키보드가 빛을 잃었다.

쌓여 있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졌다.


출입구 쪽으로 가니 장맛비가 여전히 쏟아졌다. 빗방울이 얼굴에 맞아 차갑게 스며들었지만, 더 먼 곳으로 뛰쳐나갔다. 다 젖은 벤치에 앉았다. 빗소리가 귀를 꽉 채워 내 흐느낌은 소리조차 없이 스며들었다.


손끝으로 눈물을 닦아도 금세 다시 흐르고,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다시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이 빨개진 채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나를 스쳤다. 자리 앉아 메시지를 작성했다.


‘저 퇴사할게요.’


‘일단 자리로 와줄래?’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사표를 책상 위에 올려두는 순간, 커피 자국이 배어든 책상은 더 이상 나를 붙잡지 못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는 내 눈물의 흔적을 남겨놓고 사무실 밖을 떠났다.

비는 그쳤고, 여름이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네모난 박스에 가득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한층 한층 내려갈 때마다 내 마음속 묵은 감정들도 같이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모난 박스를 들고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바람이 멈춰 있는 곳. 멈춘 세상. 유일하게 내가 쉴 수 있는 장소였다.


동료들에게 아무 말 없이 퇴사한 게 미안해 연락했다.


“뭐해?”


“남자 친구랑 있지 이따 전화할게.”


“뭐해?”


“지금 지인들이랑 있어 나중에 연락할게.”


“뭐해?”


“부모님 봬로 시골에 내려왔어.”


“응 알았어.”


아무도 내게 왜 퇴사했는지 묻지 않았다.

예전엔 함께 웃고, 맛있는 것도 나누던 사람들인데, 체중이 빠질수록 내 머리카락처럼 하나씩 사라졌다. 사람들도, 내 기억 속 자리도.


다이어트만 하다 보니 문득 외로움이 살처럼 내 마음 위로 쌓였다. 가끔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 연락하면 이미 모두 다른 자리에서 웃고 있었다. 사람들 하나씩 떠나가고, 결국 남은 건 나와 내 체중뿐이다. 체중과의 싸움이 나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친구들보다 더 친구 같았고, 날마다 함께 보내며 서로 숨소리까지 익숙해졌다. 퇴사하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연락이 뚝 끊겼다.


종이비행기를 날려 모두 떠나보냈다. 비행기는 1평 남짓한 고시원 벽에 닿아 금방 떨어졌다. 바닥에는 떨어진 수많은 종이비행기만 있었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체중계의 숫자는 새처럼 가벼워졌고, 내 몸은 면봉처럼 말라갔다. 거울 속엔 여전히 뚱뚱했던 내가 서 있었다. 조금만 더 빼면… 더 마르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만 더 빼면, 그때쯤 되면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을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누군가의 웃음소리, 무심한 인사, 손끝의 온기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루가 흘러간다. 아니면 반려동물이라도 키워야 한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고시원 방 안은 시간이 멈춘 공간이었다. 벽시계의 초침만 살아 있고, 그 이외의 모든 게 멈춰 있었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내게 ‘괜찮냐’고 물어봤다면—

나는 이게 잘못된 방향이라는 걸 조금은 일찍 알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굶주림을 참고 있었다. 어디선가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가 스며들었다. 불판 위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 타들어 가는 냄새가 벽을 넘어 내 코끝에 닿았다. 입안에 침이 고였다.


그동안 잘 참아왔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집 근처 허름한 고깃집 문을 밀었다. 문틈 사이로 따듯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 불빛은 마치 나를 유혹 하는 것 같았다.


주택들 사이, 깜빡이는 간판이 유일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낡은 유리문을 밀자, 고기 굽는 냄새와 웃음소리가 동시에 밀려왔다. 동그란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는 소주잔을 부딪치고, 누군가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집었다. 그 사이를 가로질러 구석 빈자리에 가 앉았다.


“어서 오세요. 몇 명이서 왔어요?”


“한 명이요.”


“뭐 드릴까요?”


“삼겹살 삼인분주세요”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참! 된장찌개도 하나 주세요.”


1년 만에 처음 하는 외식이었다. 이런 날은 같이 먹어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나는 혼자였다.


나온 삼겹살을 불판에 올려 구웠다.

삼겹살 하나 제대로 구울질 모르는 나라 항상 지인들이 구워줬었는 데라는 생각하며 혼자 추억에 잠겼다. 불판 위 삼겹살은 지글거리며 익어갔다.


삼겹살을 한 점 집어 입으로 넣는 순간, 갑자기 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처음엔 고기의 탄 냄새인 줄 알았다. 숨을 들이쉴수록 냄새는 더 짙어졌다. 숨이 막힐 만큼.


방금 먹은 삼겹살에서— 살아있는 돼지가 진흙탕 위를 구른 듯한 이상하고 역겨운 냄새가 내 몸에서 피어올랐다. 순간, 위가 끓고 목이 조여왔다. 구역질이 밀려 올라왔다. 까만 봉지를 움켜쥐고 그대로 토했다.


토하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참을 수 없었다. 숨이 막혔고, 위장에서 차오르는 음식물이 목을 타고 올라올 때마다 내 안에 쌓인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남았다. 계속 살을 빼야겠다는 집착. 이유도 목적도 없다.


마치 눈앞에 있는 먹이를 향해 달려가는 동물처럼, 살을 빼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일념으로만 가득 찼다.


자정이 되니 머릿속에 경쾌한 알람 소리가 울렸다. 또다시 배가 고파졌다. 부엌으로 달려가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양푼에 밥을 한 솥 넣고 반찬을 마구잡이로 꺼내 양푼에 들이부었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는 찌개도 거침없이 퍼먹었다.


다 먹으니,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부엌에서 칼을 꺼내 들고 나와, 방에 가득 쌓여 있는 까만 봉지들 앞에 섰다.


칼을 쥐고 있는 손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고, 챙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까만 봉지 위를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펑 소리가 나며 봉지들이 터졌다. 그 위를 뒹굴었다.


드디어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찾았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이 내 몸 안에서 역겨운 냄새로 되살아났다.


점점 나는 피폐해져만 갔다.


알바라도 해보려고 이것저것 손을 대봤지만 이상하게 일이 어렵고 적응할 수 없었다. 어디를 가든 일을 못 한다고 혼나기 일쑤였다. 자존감은 점점 떨어지고, 돈도 벌지 못하니 신용카드까지 밀려 나에게 빚이 쌓였다.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돈이 내 앞에 커다란 문처럼 서 있었다.


나는 항상 바르게 살아왔다. 어렸을 때 한 나쁜 짓이라곤, 고등학교 시절 차별하는 선생님 어깨를 살짝 쳤던 것 정도였다. 항상 누가 나를 나쁘게 생각할까 걱정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길가에 쓰레기 하나도 그냥 두지 않고 가방에 챙겨 집으로 가져갔다. 나는 무조건 바르고 착하게 살았다.


살만 뺀다면 행복할 줄 알았다. 몸무게에 대한 강박은 여전히 나를 짓눌렀고, 그런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 하나둘씩 떠나갔다. 살이 빠진다는 쾌감에 주변 사람이 나를 떠나는지도 모르고 계속 앞만 보고 달렸다. 그즈음 직장에서 퇴사했다. 들려오는 얘기로는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아다닌다고 들었다. 이상한 약을 먹고 미쳐버렸다고.


이제서야 깨달았다. 예전의 나는 행복했지만, 불행만 좇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맛있는 거 사드리는게 행복이고, 친구가 힘들 때 고민 상담 해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는걸.

지금은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아 그저 뼈아픈 외로움을 견디며 지내고 있다.언젠가는 다시 자신감을 찾고, 주변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내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어머니가 계시는 시골로 잠시 여행 가기로 했다. 어머니가 하시는 농사도 도우라는 부탁이 함께였다.


그즈음, 기나긴 장마도 그쳤다. 높은 하늘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들이 내 뺨까지 스치는 듯했다. 캐리어를 끌고 시골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낡고 연륜 있는 나무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로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들의 이야기는 알 수 없었지만, 온화한 기운이 느껴졌다. 캐리어를 끌고 자갈밭을 지나고 아스팔트를 지나고 계속 걷다 보니 흙바닥이 나왔다. 시골집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강아지 한 마리, 미리 마중 나온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꽉 안아주었다. 그 순간, 지난날의 장맛비처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겨울에 따듯한 털옷으로 날 감싸주듯 포근하고 따듯함을 느꼈다.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지친 내 마음에 커다란 위로가 된 느낌이다. 가만히 쉬어도 되련만, 시골까지 내려와 가만히 있으면 잡생각이 몰려올 것 같았다.


알록달록하게 꽃무늬가 그려진 바지를 입었다. 그 위에 통풍이 잘되는 쨍한 티셔츠, 챙 넓은 밀짚모자까지 썼다. 팔토시, 장갑, 장화까지 갖춘 나는 완전히 채비를 마치고 밭으로 향했다.


삽으로 땅을 한 웅큼 팔 때마다 내 마음속 짐도 한 웅큼씩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마와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지만 나는 쉬지 않았다. 딱딱한 땅을 빨리 일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때 바닥에서 뭔가 걸렸다. 조심스레 파보니 고구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구마네”


어머니가 입가에 미소를 짓고 말했다.


“응”


“먹는다는 게 나쁜 게 아니야 사람은 먹고살아야 움직일 수 있어”


“응”


“오늘 저녁은 고구마를 먹을까?”


“좋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잔잔한 호숫가에 조약돌이 던져지듯 내 마음에 파문이 일어났다. 그래 사람은 먹어야 살고 먹어야 움직일 수 있어 먹는다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그 생각이 내 마음속 깊은 울림을 남겼다.


혼자 있을 땐 강박적으로 피했고, 조금만 먹어도 역겨운 냄새가 나 다 토해버리기 일쑤였다. 지금 내 몸은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이상하게 고구마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집에 와 솥에 찐 고구마는 노릇하고 달콤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음식이었다. 집 안은 금세 달콤한 냄새로 가득 찼고,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무니 기분이 좋아졌다. 멈춰져 있던 머리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멈춰 있던 내 시간도 다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구마를 다 먹으면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고구마를 다 먹고 강아지와 달리기를 했다. 그냥 마음 가는 데로 바람 부는 대로 달리고 싶었다. 강아지는 왕 왕 짖으며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신나 하는 거겠지. 덩달아 내 마음도 설렘이 차올랐다. 달라진 나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강아지와 나는 지평선 너머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자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이 온몸을 꿰뚫었다.


며칠간 시골 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시작한 건 청소였다. 약봉지를 모두 치우고, 까만 봉지도 정리했다. 바닥과 책상도 닦고 침대 커버도 빨았다. 방 한켠 시골에서 캐며 땀 흘렸던 고구마 한 박스를 놓았다. 그 달콤한 기억을 떠올리며, 건강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띠리링—


아침 6시를 알리는 알람 소리가 울렸다.

나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달리기를 시작했고, 어느새 8킬로미터를 뛰었다. 가슴이 벅찼다. 스스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집으로 돌아가 고구마를 삶았다. 고구마의 달콤함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때쯤이었을까. 머릿속에 들리던 알람 소리도, 이제 아침을 울리는 맑은 알람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듬성듬성 빠졌던 내 머리카락도, 흙 위로 푸릇한 새싹이 돋아오르듯 까맣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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