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꽃, 사유
산을 걷다 보면 계곡에 고인 맑은 물을 보곤 한다. 그러나 나뭇가지로 한 번 휘젓는 것만으로도 물은 순식간에 탁해진다. 가라앉았던 낙엽이며 온갖 부유물이 떠오른다. 내 마음과 비슷하다. 평소엔 고요하여 맑아 보이지만 쉽게 흔들리는 마음은 자주 부예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떠올랐던 것들은 다시 가라앉는다. 그러나 언제든 다시 흐려질 것이다. 거센 폭우를 만나 고인 것들이 비워지면 투명하고 맑은 물이 될까. 나는 맑고 투명해지기를 포기한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을 떠오르게 두었다가 가라앉히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 물이 넘쳐 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생긴다. 그러나 또 살다 보면 새로운 찌꺼기들이 가라앉는다. 생을 사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있는 그대로'라는 말의 실체를 찾지 못한다. 언젠가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이고 나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있는 그대로'를 믿고 하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손에 잡히지 않는 진실과 같다. 대체 누구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란 말인가. 누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본다고 했을 때, 내가 아는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본다고 할 때, '있는 그대로'란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사람은 없다. 나조차도 나의 있는 그대로가 어떤 모습인지 잘 알지 못하는데 어느 누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줄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나'는 나와 타인이 본 총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그 누구도, 나 자신조차도 총합의 나를 알기는 어려운 것이다. 총합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는 어떻게 시대의 명제처럼 쓰이고 있을까?, 나는 의문을 품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끊임없이 생각한다. 물론 끊임없다는 것이 매일매일 매 순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 생각을 놓지 않고 산다는 말이다. 나를 알아야 나를 놓을 수 있다. 내가 흐려지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나의 얽매임을 알지 못하고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는 단지 외부의 기준으로 나와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일 뿐이어서 절반의 진실에도 닿지 못한다. 그러나 순도 100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는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있는 그대로'가 내 삶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언제나 늘 내 삶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는 나의 삶을 내게서 증명받기를 요구할 뿐 타인에게서 요구당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때때로 나 스스로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고, 나와 가까운 타인은 '있는 그대로' 대신 제멋대로 내 삶을 재단하곤 한다. 은근한 비난도 서슴없다. 나 또한 타인의 삶을 내 기준에서 판단하고 멋대로 해석하곤 한다.
나는 흔들린다. 글을 쓰고 산을 걷는다. 부유물이 떠오름과 동시에 가라앉는 시간이다. 떠오르는 동안은 어떤 것이든 어떤 감정이든 그저 떠오르게 둔다. 미움과 비난과 열등감과 소외감과 질투 같은 고상하지 못한 감정들과 그에 따라오는 갖은 욕설과 증오까지도 내버려 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찌질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찌질한 나를, 발가벗은 감정을 비난하지 않는 것을 제1원칙으로 한다. 그래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두는 일, 이것은 말만 쉽지 행함은 말도 못 하게 어렵다. 있는 그대로의 실체는 온갖 오염물에 더럽혀져 더럽고 추악한 것이기 십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태도를 고상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실상은 똥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상황에 더 가깝다. 내게도 자아상이란 것이 있어 내 안의 비루함을 마주하는 일이 고통스럽다. 비루함은 내면 깊숙이 묻어두고 떠오르지 못하게 막는 게 좋을 거라고 유혹하거나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것을 꺼내 마주하라는 목소리를 붙든다. 그 시간을 살아야 겨우 조금 깨끗해진다는 것을 언젠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더러워지지 않고 깨끗해질 수는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나의 추한 내면을 인정하고 나야 내가 조금이나마 좋아진다. 나와의 대화에서 솔직해지는 게 모든 시작의 시작이다. 그런 후엔 아주 미세하나마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는 멈춤 혹은 고여있음의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는 단 한순간의 멈춤도 없는 사유의 흐름이어야 한다. 나 혹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하고 함께 똥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는 내가 원하지 않는 나 혹은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판단하지 않음과 불안의 외줄 타기를 견뎌야 한다. 고이고 고이다가 결국 썩는 물이 되지 않을까, 판단하지 않음이 진정한 사랑일까, 그 불안을 견디고 끝까지 함께 하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는 언제까지나 끝없는 과정일 뿐 그 끝은 없는 무목적성인 것이다. 그 끝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를 내세운 다른 무엇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 나를 보려 하지 않는구나, 나는 내 삶을 무엇으로 증명해야 할까,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어서 함부로 서운해할 게 못 된다. 그렇게 흘러온 생각의 끝에서 나는 다시 홀로임을 감당하리라, 생각한다. 고독으로 도망치는 것이라 비난한대도 도망쳐 머무를 안식처가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졌다.
나의 고독에 빛을! 이것의 다른 이름은 어둠이고 세상엔 그 어둠만이 보인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