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꽃, 사물
희부연한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부엌 식탁에 앉아 집안의 소음을 듣는다.
냉장고 모터가 위잉 거친 소리로 돌고 그 사이로 시계 침 똑딱이는 소리가 섞인다.
시계 소리는 들리는데 시계는 없다.
며칠 전 부엌에 걸려 있던 작은 벽시계에서 분침이 똑 떨어졌다.
얇고 가는 분침이 오랫동안 돌고 돌다 수명을 다했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까진 붉은 초침도 있었는데 한동안 애초에 초침 없는 시계로 여기고 있었다.
아, 그리고 또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처음에 이것은 추시계였다. 시계추를 잃은 지는 몇 년 되었다.
중요하지 않은 것부터 하나 둘 잃고 있었구나. 그렇다고 본질에 다가가는 것도 아닌데, 쓸쓸해지기는 사물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구나.
하여도 며칠 전까지 똑딱똑딱 시계의 역할을 잘 해내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랬는데 결혼 선물로 받은 시계니까 이십 년 넘는 세월 중 고작 몇 달 초침이 없었건만 초침이 있었다는 사실도 초고속으로 잊더니 분침이 부러지자마자 미련 없이 버렸던 것이다.
재활용 쓰레기통에서 시계를 찾아 귀에 댄다. 시침 하나 남은 시계에서도 소리가 나나?
소리가 난다. 배터리를 분리한다. 그래도 소리가 난다. 귀신이 들렸나. 집안을 둘러본다.
집에 더는 아날로그시계가 없는 줄 알았는데
거실 벽에 하나 더 있다. 거기서 나는 소리다.
아무리 사물이래도 그렇게 오래 함께 해놓고는 쓸모를 다하자마자 마지막 인사도 없이 버려버린 냉정한 나를 버려진 시계 대신 나무라고 있다.
똑딱똑딱
작고 둥근 엔틱풍 시계를 본다. 원래 있던 곳에 다시 건다. 시침만 겨우 남은 시계의 사진을 찍는다.
그동안 고마웠어.
며칠 없으니 불편하더구나.
힐끗힐끗 나도 모르게 시간을 자주 확인하며 안심하거나 서두르거나 매 순간 할 일을 정했다는 것을 요 며칠 너 없이 지내면서 알았다.
우리 오래 함께 했다.
마땅히 사물이라도 정이 들기 마련이지.
그러나 다른 시계에 비해선 나와 친밀했으나 다른 사물에 비해서는 직접 접촉할 일이 없어 데면데면했다.
우리 살뜰한 정을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네 쓸모와 함께 했음이 나는 기쁘다.
이제 보니 재활용은 안 되겠다.
폐 포장지에 둘둘 말아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이것이 더는 미련 둘 것 없는 사물의 마지막 운명이다.
나의 삶도 어느 날 쓸모를 다하고 미련 없이 떠났으면 싶다.
나, 비록 세상에 나와 부엌 한 귀퉁이에 걸려 있던 작은 시계보다 더한 쓸모로 쓰이지 못했다 해도 사랑의 쓸모까지야 없지는 않았으리라.
서서히 어둠에 스며드는 빛이 아침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