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꽃, 가족
엄마는 빳빳하게 풀 먹인 홑청을 목화솜에 입히길 좋아하셨어.
다듬잇돌에 대고 방망이로 두드린 옷감에서는 서걱서걱 파르스름한 향이 났어.
엄마는 대바늘처럼 크고 굵은 바늘에 가끔 머릿기름을 발라가며 굵은 실로 이불을 꿰맸지.
고요하고 정갈한 시간이었어.
엄마 속은 알 길이 없지만 그 공간 그 시간 안에 있던 어린 내게 그랬다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친구가 이불을 꿰맸다는 말을 들으니 저절로 떠오른 한 장면이야.
엄마는 오래도록 무거운 솜이불을 이고 지고 다니셨어. 솜이 오래되면 솜틀집에 맡겨서 다시 터서 새로 풀을 먹인 홑청을 입히면 이만한 이불이 없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지. 그랬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무거운 솜이불을 버렸다고 했어. 사실 이제는 무겁기만 하지 따뜻하지도 않았거든. 아무리 좋은 목화솜도 어쩔 수 없는 소비기한이 있는 게 아니겠어.
그런데 그 밤 가볍고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자는데 약간은 쓸쓸한 냄새가 나더라고. 엄마는 늙었고 늙음의 속도는 한 해가 다르게 빨라져서 어쩌다 보는 엄마는 매번 폭삭 늙어 있어.
아마 그래서 버렸을 거야. 가벼워지고 싶었던 건 이불이 아니라 남은 삶에 대한 미련이었을 거야.
친구는 이불을 꿰매며 이런저런 생각이 나 뭘 좀 써볼까 했는데 금세 다 까먹었다고 했어.
그럼 이불을 다시 꺼내라 농을 하고는
나도 이불을 꺼낼까 했지.
그랬더니 느닷없이 엄마의 솜이불이 펼쳐지고 이 생각에 닿고 만 거야.
나는 오랫동안 미련이 많은 삶을 미워했어.
그러나 이제 나는
엄마의 남은 삶에 조금의 미련은 남아있어도 된다고 생각해. 내가 미워한 건 미련보다는 사람이었던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