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꽃, 가족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가 자퇴를 하고 싶다고 했다.
뜬금없이 갑자기.
근래 몇 년 사이 자퇴가 유행처럼 흔한 것이 되기는 했다. 학교에 다녀온 후 저녁에 이야기하자 했고, 저녁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를 그만두고 그림 그리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한다. 방학 때도 그렇게 집중하는 걸 보지 못한 터라 어이가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그림 그릴 시간은 충분하다 했다.
"공부하기 싫잖아? 그러면 학교 다니는 게 나을 텐데."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검정고시 보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해. 공부를 꾸준히 해왔으면 모를까 힘들어. 그러려면 오히려 그림 그릴 시간이 없을 걸."
"이제라도 공부 열심히 할 거야. 그림은 검정고시 보고 나서 그릴게"
"공부 열심히 안 해도 돼.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할 필요 없어. 공부는 학교 공부 말고 니가 좋아하는 공부 하면 돼. 세상에 재미있게 공부할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그냥 친구들이랑 즐겁게 학교 다니다 졸업하자."
그날 아이는 끝내 눈물을 쏟았고 밥을 먹다 심하게 얹혀서 몇 날 며칠 거의 먹질 못했다. 이 대화의 수확은 뜻하지 않은 다이어트로 2~3kg 빠진 살이었다. 철이 덜 든 모녀는 살이라도 빠져 좋았다나 뭐라나.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공부를 안 한다.
"공부 열심히 한다며?"
"엄마, 그거는 자퇴를 해서 검정고시를 본다 했을 때 얘기고."
얼척이 없다.
아이가 늦게까지 잠을 안 잔다.
"뭐 하느라 안 자?"
"으응, 내일 모의고사 보는 날이야."
"오, 공부했어?"
"아니, 그게 아니고오~"
"아아, 내일 학교에서 자려고?"
"응."
배시시 웃으며 품에 안긴다.
"아유, 이 뻔뻔이. 어쩜 이리도 뻔뻔할까?"
"엄마는 그래도 이런 내가 좋지?"
"그래, 이 뻔뻔아, 좋다."
아이를 안아주며 내가 말한다.
"뻔뻔아, 뻔뻔이를 웹툰 캐릭터로 만들어 봐.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자고로 내가 잘 아는 것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거야."
"그럴까?"
"그래, 어여 자."
"응."
시월도 중순에 들자 은목서 짙은 향이 피어난다. 시월에 피는 꽃은 향이 깊고 진하다. 한 가지 꺾어 곁에 두니 묵직하면서도 시원한 향이 주위를 맴돈다.
아이야, 저마다 자신의 꽃을 피우면 된단다. 남들 꽃 피울 때 함께 피우든, 자기만의 때를 기다렸다 홀로 피우든,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든, 작고 소박한 꽃을 피우든, 너는 '너의 꽃'을 피우기까지 수고로움과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고, 나는 언제나 네게 응원과 사랑이라는 북을 돋아줘야겠지. 어야든동 좋은 향기를 품길 바란다, 은목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