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빛부전나비가 내려앉은 노을

생각 꽃, 겨울밤

by 풀잎



집의 베란다에서 보는 겨울 저녁의 노을을 좋아합니다
노을은 언제라도 좋지만
저녁밥을 짓다 무심코 내다본
검푸르스름한 저녁 하늘로 떼까마귀일지 기러기일지
한 떼의 시꺼먼 새무리가 지나간 후
산 능선 위로 고요히 귤색 노을 번지면
나는 귤빛부전나비 떼가 내려앉았나 생각하고 마는 것입니다
나비 떼 차곡차곡 서로의 온기로 내려앉는 장면을 상상하며 말이에요 귤빛은 남녘의 색, 온기가 아니고서야 귤빛 따스함이 어디서 오겠어요

노을 지나고 새파랗게 추운 서쪽 하늘에 카랑카랑한 초승달이 제 몸 드러냅니다
마침내 어둠에 깃든 저 달은 추운 밤이 싫은 길거리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긁힌 상처일까요
상처 입은 하늘은 하루하루 달을 조금씩 늦게 토해내고

그러는 동안 달의 살은 조금씩 차오르겠지요
낮의 상처가 아물듯이 서서히 말이에요
그렇게 이른 저녁 서쪽 하늘로 넘어가던 달은
밤하늘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것이고 응당 밤을 배회하는 영혼들과 함께 하겠지요


- 시간의 흐름만으로도 가능한 무엇이 있다는 것 / 참 좋구나˚

빛의 멸시가 다시 이어진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귤빛부전나비 노을이 내린 겨울밤이 따스한가요?



˚김소연, 촉진하는 밤, 「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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