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고래 악을 쓰는 변 대리가 나는 무섭다기보다 어색했다.
아무리 내가 직급과 나이에서 아래라고 해도, 그가 그런 막말을 할 만한 친분이 우리 사이엔 없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난 어울리지도 않는 오기가 생겼다.
“변 대리님,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말씀하세요. 다짜고짜 반말하지 마시고요.”
“뭐?”
“대리님 업무가 비용담당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는 거 아녜요? 모든 전표가 완벽하면, 변 대리님은 대체 무슨 일을 하세요? 회계팀에서 나눠준 매뉴얼에도 이런 케이스에 관해선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요, 여기가 학교예요? 손바닥을 맞으라뇨?”
변 대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그가 내게 욕을 하거나, 당장에라도 세 개 층을 뛰어 내려와 내 따귀라도 갈길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변 대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야, 동료끼리 편하게 지내자는 취지였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유리씨도 그러는 거 아닙니다. 같은 배를 탄 사람끼리 얼굴 좀 보면서 일을 해야지, 만날 빈자리에 전표만 던져놓고 가고 말이야. 이번만 해도 그래요, 이렇게 복잡한 일이 있었으면 전표 끊기 전에 물어라도 보는 게 예의 아닙니까?”
“그럼 제가 지금 변 대리님 자리로 가겠습니다.”
내가 쏘아붙였다. 그러자 변 대리는,
“올 필요 없습니다. 물류팀에 유사한 일 있었으니까 거기 가서 배워서 전표 끊으세요. 또 잘못 끊어오면 얄짤없습니다. 빠꾸예요, 빠꾸!”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물류팀 비용 담당이 황주희였다.
황주희의 사생활을 떠벌린 뒤 난 혹시라도 그녀를 마주칠까 봐 노심초사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녀가 또 우리 층 화장실에 와 있으면 어쩌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어떤 경로로든 그녀는 결국 내 파렴치한 행각에 대해 들었을 것이 뻔했다. 직장 내 소문이란 것이 그렇지 않나.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로 시작된 말도 하루만 지나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저 단체로 쉬쉬하는 것뿐이니까.
그런데 내 발로 그녀를 찾아가야 한다니.
난 황주희에게 말을 거느니, 차라리 변 대리에게 손바닥이든 허벅지는 한 대 맞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한참을 미적거리다 겨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황주희는 컴퓨터를 보며 열심히 타이핑 중이었다.
난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서울 영업팀에서 왔는데요.”
충분히 인기척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주희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화들짝 놀랐다.
“어서 오세요!”
환하게 웃는 얼굴에 빨간 입술이 도드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