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우정 (4) 친구

by 노동자a

“전표처리에 대해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회계팀 변 대리님이 그러시던데, 이 팀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앉으세요. 커피 한잔 드릴까요?” 그녀가 빈 의자 하나를 끌어왔다. 과도한 친절에 난 더 무안해졌다.

“괜찮아요. 이것만 여쭤보고 금방 갈 거예요.”


난 그녀의 눈을 피하며 영수증 뭉치를 쑥 내밀었다.


“우리팀 김 대리님이 회사 차로 외근을 나갔다,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어요.”

“어머나! 안 다치셨어요?” 그녀가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멀쩡하세요. 사고는 부산에서 났어요. 대리님은 근처 정비소에서 차를 수리받고 법인카드로 결제했대요. 거기 육십칠만 원짜리 영수증이에요. 그리고 피해자랑 합의를 봤는데, 알고 보니 피해자가 그 지역 횟집 사장이었대요. 대리님은 미안한 마음에 거기서 식사를 하고는 피해차량 수리비, 합의금, 식비까지 한꺼번에 법인카드로 결제했대요. 횟집 영수증 이백삼십만 칠천오백 원 중에 칠천오백 원은 알탕 값이에요.”


영수증을 살피던 주희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근데 날짜가 일요일이네요? 그리고 서울 영업사원이 왜 부산에서 발행된 영수증을 처리해달라세요? 요일, 장소 모두 규정에 어긋난 것 아녜요?”


입사 초, 나 역시 그런 것들을 궁금해했다. 그때 난 만 열아홉 살이었고, 아직 학교에서 배운 정의, 이상, 진실, 뭐 그런 것들에 익숙할 때였다.

의문이 드는 영수증을 받았던 날, 규정집을 찾아보고 회계팀에 자문까지 한 뒤 영수증을 준 영업사원에게 가서는, 죄송하지만 비용처리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영업사원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유리씨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 내가 벌어들인 영업이익에서 나오는 거야. 근데 뭐가 어쩌고 저째? 만날천날 책상머리에 앉아 종이에 풀칠이나 하는 것들이. 이 사람아, 물건을 팔려면 고객을 찾아다녀야 해. 거래처 사장이 제주도 골프장에 있으면 땡볕에서 뒤꽁무니 쫓아다니고. 사우나에 있으면 같이 홀딱 벗고 들어가 땀 뻘뻘 흘리는 게 영업이라고. 우리가 죽을 둥 살 둥 돈 버는 동안,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히터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희희낙락하는 것들이 어디서 토를 달아? 회계팀 누구야, 앞장서!’


그가 내 등을 떠밀었다.

그날 이후, 난 영업사원들이 가져오는 영수증에 질문을 삼갔다.


“영업사원이 영업하는데, 일요일이든 부산이든 뭐가 대수겠어요.”

“하긴, 우리팀에도 비슷한 일이 있긴 했어요. 근데 워낙 복잡했던 건이라 분개가 좀 까다로웠어요. 찾는데 시간 좀 걸리겠는데...... 제가 자료 정리해서 유리씨 자리로 가도 되죠?”


퇴근 무렵, 주희는 관련 전표를 모두 재출력하고 회계시스템을 일일이 캡처해 프린트까지 해왔다.

그녀는 두툼한 서류 뭉치와 초콜릿 바, 캔 음료수, 카드 한 장을 한꺼번에 내밀었다.

카드에 동글동글 예쁜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 우리 동갑 맞지? 친하게 지내자. 유리의 영원한 친구, 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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