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점심시간은 열두 시부터 한 시까지였다. 나는 구내식당에 가기 전 항상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었다.
그날도 난 열두 시 십 분 전에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아래층에서 근무하는 물류팀 황주희가 우리 층 화장실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짙은 쌍꺼풀에 보라색 아이섀도를 펴 바르며, 양변기 칸에 든 사람에게 잘 들리도록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난요, 남자친구가 명동 한복판에서 ‘너, 여기에 서 있어!’ 하고 가버리면,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삼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기다려요. 한번은 남자친구가 손을 올리더라고요. 물론 시늉만 했지 진짜로 때리진 않았어요. 하지만 만약 그가 정말 날 때렸다 해도 난 그냥 맞았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그러는데도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난 그녀의 화려한 이목구비와는 어울리지 않는 미련한 스토리가 듣기 싫어, 재빨리 화장실에 나왔다.
그리고 그날 점심에 황주희의 이야기를 각색해가며 우리팀 여직원들의 환심을 사려 했다.
“물류팀 황주희 씨 있잖아요. 되게 도도하게 생겼으면서 자존심은 없나 봐요. 남자친구가 길바닥에 버리고 가면 그 자리에 선 채로 오매불망 그 남자를 기다리겠대요. 손찌검해도 감사히 맞겠다던데요?”
“도도는 개뿔. 딱 보면 남자 없이 못 사는 스타일이구만.”
은혜 언니가 비웃으며 옆에 앉은 정애를 툭 쳤다.
“생긴 건 술집 여자던데, 하는 짓은 조선 시대 아낙네였네.”
정애가 낄낄댔다.
사실 그때까지 난 황주희와 말 한마디 나눠본 일이 없었고, 그저 얼굴과 이름을 아는 정도였다. 그런 사람의 험담을 주동하자니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난 마음이 급했다. 그때 서울 영업팀 여직원은 은혜 언니, 정애, 나까지 총 세 명이었는데, 난 그 둘 사이에 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치스럽지만 남의 뒷말로 그들과 어울릴 구실을 삼았다. 내 천박한 노력의 효과는 그날 점심 후 이어진 그녀들과의 짧은 티타임까지가 전부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