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어시스턴트 (10) 한강

by 노동자a

커피숍에 들어온 뒤로 영의 고개는 창밖에 고정되어있다.

춘자는 테이블 아래로 영의 빨간 구두를 힐끗거렸다. 냅킨에 물을 부어 몇 번이나 닦아냈지만, 아직도 남자의 가래침이 생생했다.

마흔이 넘은 딸은 어쩌다 택시를 잘못 탔다는 이유로 길 한복판에서 멸시를 당하는 삶을 살게 된 걸까.

그 인생엔 애초에 어떤 잘못이 있었을까.

어떻게 해야 딸이, 적어도 앞으로는, 오늘 같은 일을 겪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니미럴, 커피 두 잔에 만 원이나 받아 처먹으면서 갖다 주지도 않네.” 춘자가 불평했다.


영은 여전히 말이 없다.

춘자는 배낭을 열고 신문지로 싼 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 영 앞에 내려놓았다.


“열어봐라.”


영이 느릿느릿 신문지를 펼쳤다. 통장과 도장이 나왔다. 통장을 여는 영의 손이 급해졌다. 눈으로 잔액을 읽던 영이 믿어지지 않는 듯 입으로 다시 읽었다.


“일, 십, 백...... 이천 오백만 원?!”

“니 혀라.”

“오빠 철물점 내 준다며?”

“그랄라고 했는디...... 그냥 니 혀. 그라고 영아, 엄마가 할 말이 있는디......”

“내가 먼저 말할게!”


영이 급하게 춘자의 말을 막았다. 그러고도 한동안 입술만 달싹이던 영이 마음먹은 듯 가슴을 억누르던 것들을 쏟아냈다.


“엄마, 나 가게에서 잔심부름해. 요즘엔 손님이 없어서 주인집에 가서 청소하고 빨래해. 가끔 운동화도 날라."

"……."

"사장이 운동화 사업을 벌였다 쫄딱 망해서 빚더미에 앉았대. 그래서 그 빚 갚겠다고 미용실을 접겠다는데, 그러면 안 되는 게, 나 처음 왔을 때 그 사람들이 그랬어. 나한테 미용기술 가르쳐 주겠다고."

"……."

"다른 데서는 이제 아무도 안 그래. 당연하지. 나를 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나이만 잔뜩 먹었으니, 완전히 끝난 인생이잖아. 근데 여기선, 내가 교육받고 자격증 따면 어시스턴트로 인정해준댔어."

"……."

"어시스턴트가 뭐냐면 정식 보조야. 정식 보조.”


말을 마친 영이 엄마의 눈치를 슬슬 살폈다.


“그러니까...... 미용실이 유지되어야 내가 교육을 받아서 어시스턴트가 될 수 있다고.”


주눅 든 딸의 모습에 춘자는 울컥 목이 메었다. 침을 두어 번 삼켜 속을 가라앉히고 딸의 손을 잡았다.


“그려, 영아. 그 돈으로 니 허고 싶은 거 혀.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비싼 커피도 사 먹고. 그란디 영아...... 보조 말구. 남 돕는 거 말구. 니가 주인공이 되는 거를 햐. 지금이라도. 이제라도. 응?”


사정하듯 기도하듯 간절히 말하는 춘자를 영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엄마에게 잡힌 손 하나를 빼내 커피잔을 들었다.

두 잔에 만원이 넘는 커피는 달착지근했지만 좀 불편한 맛이었다.




터미널까지 배웅하겠다는 영을 억지로 돌려보낸 춘자는 공덕역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밖으로 나왔다.

혼자서 택시를 잡아 볼 작정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아까 같은 일을 또 당하면 어쩌나. 딸애가 어디선가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한참 만에 택시 한 대가 멈추더니 기사가 차에서 내려 후다닥 뛰어왔다.


“짐 이리 주세요, 어머니.”


앳된 남자는 춘자의 배낭을 조수석에 싣고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운전석으로 돌아온 기사가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터미널...... 아니, 마포대교 좀 건너 줄 수 있을까?”


일 분이나 지났을까. 택시가 긴 다리의 초입에 들어섰다.


“여기가 마포대교예요.”

“벌써? 이리 가차워?”


춘자는 몸통을 오른쪽으로 꺾고 두 손과 이마를 창에 붙였다. 눈앞에 푸른 강이 활짝 열려있었다.


“아...... 이래서 딸애가 여길 오자고 한 거였구먼. 나한테 이 장관을 봬주려고...... 그러다 그 꼴을 당한 거였구먼.”


참았던 눈물이 기어이 떨어졌다. 눈치 빠른 택시기사가 버튼을 눌러 뒤쪽 창문을 슬그머니 내려주었다.

시원한 강바람이 춘자의 젖은 볼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어디선가 나지막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끝이 아니다, 딸아…… 아직 끝난 게 아니란다, 내 어린 딸아.”


중얼거리는 소리가 자신이 낸 것인지, 강물의 말을 바람이 실어 나른 것인지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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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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