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어시스턴트 (8) 하필 배부를 때

by 노동자a

미용실을 찾는 손님이 점점 줄어들다가 아예 끊겼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모처럼 현관이 열렸다.

오랜 단골이며 달래와는 친구처럼 지내던 은영 엄마였다.


“은영아,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파마 다 풀어졌네. 이쪽에 앉아.”


달래가 반색하는데 은영 엄마는 현관에 멀뚱히 선 채로 말했다.


“달래야, 동네 사람들한테 불량품 강매하고 그러면 안 돼.”

“강매라니? 불량품은 또 무슨 말이야?”

“머리 말고 앉아 못 움직이는 사람 발에 억지로 운동화 신겨 놓고, 괜찮냐 편하냐 싸네 어쩌네, 그게 강매가 아니면 뭐니? 아무리 기능성 어쩌고 해도 운동화 한 켤레에 십만 원 돈 하는 것도 그렇고."

"…."

"안쓰러워 팔아주긴 했다만 기분 상해서 다신 오기 싫더라."

"……."

"그 운동화 말이야. 신은 지 하루 만에 밑창이 반달처럼 휘더니 펴지지가 않아. 그거 하루 신고 발 아파서 며칠을 고생했어."

"……."

"모르는 표정이네. 정작 넌 안 신나봐?”


은영 엄마는 홱 돌아 미용실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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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는 한동안 미용실에 나오지 않았다.

영은 그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시급한 문제는 바로 영의 식사였다.

달래의 도시락이 끊긴 동안 그녀는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 컵라면, 빵과 우유를 사와 끼니를 때워야 했다.

혀끝이 아릴 만큼 진한 조미료 맛이나 부족한 영양, 불편한 속이야 참으면 그만이었지만 돈이 문제였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동안 영은 월급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건 면접 보던 날 협의가 끝난 사항이었다.


“서울에선 이런 쪽방 월세도 만만치 않아요. 식비에 교육비까지 합치면 우리가 돈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우린 언니를 종업원이 아니라 식구로 맞이하고 싶어요. 손해를 보더라도 월급이랑 퉁쳐드릴게요.”


달래가 말했을 때 영은 감지덕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린 것이다.

그래도 간혹 사다리에 올라 미용실 간판을 청소했을 때나 걸어서 운동화를 날랐을 때, 대수네 아파트에 불려가 구석구석 대청소를 했을 땐 소정의 현금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을 편의점 밥 한 끼에 몇천 원씩 쓰는 것이 영에겐 큰 부담이었다.


영은 처음으로 대수와 달래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대궐 같은 아파트에 찾아갔다.

아파트 벨이 여덟 번 울리고 나서야 현관이 빼꼼히 열렸다. 달래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입술 끝에 엉겨 붙은 피가 꾸덕꾸덕해 보였다. 달래는 영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깨진 액자, 핸드백, 운동화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식탁엔 음식물이 말라붙은 그릇이 잔뜩 쌓여있었다.


영은 그릇을 한데 모아 개숫물에 담그고 거실을 청소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오니 그릇이 적당히 불어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다용도실에 쌓여있는 쓰레기를 여러 번에 거쳐 내다 버렸다.


이튿날 달래는 미용실에 나왔다. 그 손에 들린 삼단찬합이 영은 눈물 나게 반가웠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은커녕 그날 저녁도 남기지 않고 찬합을 깨끗이 비웠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니 만족감이 솟구쳤다.

하필 그 평화로운 순간에 달래가 말한 것이다. 남편의 운동화 사업은 완전히 망했다고. 미용실 단골은 다 떨어져 나갔고 동네에선 인심을 잃었다고. 빚 청산이 급해 미용실을 폐업하기로 했다고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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