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상무는 무려 십 년 동안 영업본부의 수장이었다. 지방대학 출신의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초고속으로 본부장까지 승진한 살아있는 신화였다.
그런 그에게 매년 인사철, 명절, 그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에 보내지는 꽃바구니, 꽃다발, 동양란, 서양란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널찍한 임원실을 빼곡히 채우고 남은 것들은 위 아래층으로 보내져 달콤한 향기를 마구 뿜어댔다.
그러니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 K 상무가 신규사업 아이템으로 꽃을 선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문제는 그가 ‘꽃’을 개인 사업화하면서부터였다.
K 상무는 청담동에 아내 명의로 꽃집을 열었다.
꽃집 오픈일, 본부에서 차출된 스무 명은 ‘K 상무 아내가 운영하는 꽃집’으로 출근했다. 그날 난 꽃집 앞 대로변에서 종일 전단을 돌렸다.
기획팀에선 전국 영업팀들에 비공식 공문을 보냈다. 향후 거래처에 화환 발송 시 반드시 ‘그 꽃집’을 이용하라는 지시였다.
나아가 영업팀별 ‘그 꽃집’ 이용 실적을 문서로 만들어 K 상무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실적에 쪼들리는 영업팀들은 거래처 행사뿐 아니라 친인척 경조사에까지 고가의 꽃 선물을 남발했다.
대부분 법인카드로 결제된 뒤 접대비, 복리후생비, 사무용품비 등의 계정으로 회계 처리되었다.
접대비와 복리후생비는 예민한 계정이다. 직원들이 먹고 마시고 스트레스를 푸는 원천 아닌가.
그런데 그 돈을 꽃 사는데 뭉텅뭉텅 써재껴야 한다니. 영업팀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그러자 기획팀에선 본부예비비를 활용, 영업팀들의 접대비와 복리후생비 예산을 대폭 증액해주었다.
회삿돈 퍼줄 테니 ‘그 꽃집’에서 꽃 열심히 사라는 것이었다.
예산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영업팀들은 이미 감정이 상한 뒤였다.
기획팀 너희는 얼마나 팔아드리길래, 이따위 걸로 우리를 쪼느냐 따지기 시작했다.
자칭 ‘조직의 브레인’ 기획팀은 문제의 핵심을 나름대로 찾아냈다.
사실 꽃을 사느냐 마느냐 어디로 보내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팔아 드리느냐였다.
기획팀장은 팀 서무 여직원에게 특명을 내렸다. 여직원은 매월 말일 ‘그 꽃집’을 방문해, 기획팀장이 정해준 금액만큼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장미 한 송이 사지 않고 카드를 긁었다.
어떤 무리가 단체로 미치면 내부에선 아무도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 못한다.
다행히 그런 대규모의 광기는 얼마 못 가 주변에 발각되고 만다.
감사(監査)에서 K 상무는 자신은 그 어떤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특히 예산 증액 부분은 보고조차 받지 못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것은 기획팀장의 과잉 충성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K 상무는 제주 영업팀장으로 좌천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