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우정 (8) 입장 차이

by 노동자a

새 본부장으로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친 P 상무가 왔다.

그는 가공할 만한 추진력으로 본부를 통솔해 나갔다. 본부 결집력 극대화를 위해, 부임 첫 주말에 1박 2일 긴급 단합대회를 지시했다. 구성원 본인 혹은 직계가족의 경조사가 있는 경우를 제외한 전원 참석이었다.

장소는 양평 연수원. 금요일 밤엔 외부 강사의 강의를 듣고, 토요일엔 체육대회를 여는 일정이었다. 하필 주희의 결혼식 날이었다.


“양평연수원? 그럼 전세 버스를 연수원 입구로 보내야겠네. 예식장에 운동복 입은 사람들 가득하겠다. 뭐, 특색있고 좋네. 나 평범한 거 싫어하잖아. 하하하.”


난 주희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다시 말했다.


“너 결혼식, 토요일 오후 한 시잖아. 우리 단합대회는 오후 네 시에 끝나.”


내 난처한 표정에도 주희는 놀라거나 실망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그럼 너도 나랑 같이 금요일에 대구로 내려가자. 월차 내고 단합대회 빠져.” 했다.


풋. 웃던 나는 주희의 진지함에 당황했다.


“단합대회에 전원 참석이야. 새 본부장 왔는데 월차내기도 눈치 보이고.”

“됐고. 제일 친한 친구 결혼식 간다고 해. 물류팀 황주희 씨 결혼식이라고. 내가 비정규직이라 경조사를 사내게시판에 올리진 못하지만, 네가 잘 말하면 P 상무도 허락할 거야.”


난 주희의 얼굴에 대고, 넌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아니야.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P 상무는 네가 누군지도 몰라.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아니, 주희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해도, P 상무가 주희를 아주 잘 알았다 해도, 난 주희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본부행사에 빠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직장생활 십 년 차, 팀에서 유일한 고졸 사원, 막내는 아니지만 말단, 게다가 팀장이 술만 마시면 ‘회사가 언제까지 유리씨를 책임져야 해? 얼른 보호자 만들어.’라고 노래를 부르는 삼십 대 노처녀였다.

한 마디로 세상 눈치란 눈치는 다 봐야 하는 입장이었단 말이다.

P 상무와 팀장의 눈 밖에 날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더는 주희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스럽고 언짢았다.


“P 상무에 대해 내가 말했지? 추진력 장난 아니야. 본부 휘어잡으려고 긴급 단합대회 하는 거고. 본인 또는 직계가족 경조사 아니면 전원 참석하랬다니까. 오죽하면 제주도로 귀양 간 K 상무까지 참석하겠어. 팀장은 우리한텐 묻지도 않고 서울 영업팀은 전원 참석이라고 보고까지 마쳤어.”


언짢은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 말이 빨라졌다.

주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커다란 눈을 끔뻑거렸다.


“너 지금, 내 결혼식에 안 오겠다는 말을 하는 거야?”


angry-2191104_1280.jpg


월요일 연재
이전 22화동료 우정 (7) 단체로 미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