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6

by 배 지원

나를 사랑하냐는 질문에 대한 너의 대답이 기어코 내 세상을 부수고 말았다

처음은 호기심이었고 그다음은 사랑이었으며 끝무렵에는 아쉬움이었다고 한다 온전한 마지막에 다다른 지금 넌 모르겠다는 말만을 건넨다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들로 갉아먹는다 마치 우리가 함께 웃고 아파하고 토닥여줬던 기억들이 단 꿈이었다는 듯이

긴 대화 끝에 남은 건 내게 소리치던 너의 목소리, 정돈되지 않은 수염자국, 매캐한 담배 냄새밖에 없었다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추락했을까

날 여기로 끌어내린 게 너라면 널 여기로 끌어내린 건 나야?

하나 너에게 쏟아부었던 내 젊음이 이리도 빠르게 빛을 잃을 줄 알았다 해도 난 너를 품었을 거다

한때는 내 숨결조차 모두 불어넣어 주고 싶었으니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방패 삼아 내 어깨를 적시던 너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한다

슬픔의 무게가 빠진 탓인지 그날따라 유독 초라해 보였던 너의 잠든 뒷모습을 기억한다

사랑은 연민을 이기지 못한다 우습게도 나 또한 사랑으로 포장한 연민이었을 수도 있겠다 나와 같은 자리에 새겨진 흉터를 사랑했고

흉터가 맞닿으면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을 사랑했다

밑바닥을 보인다는 게 서로에 대한 신뢰의 반증이라는 사실을 왜 알지 못했을까 우린 왜 이리 안타까운 사람들인지 따져 묻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순간의 감정은 흩뿌려지고 추억은 왜곡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마주 볼 수 있을까

견딜만하다가도 하루에도 수천 번씩 가슴에서부터 뜨겁고 축축한 뭔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곤 이내 눈가를 젖어지게 만든다

나는 하루애도 수천 번씩 너와의 추억을 삼켜댄다

아무도 이런 걸 괜찮다고 할 수는 없을 텐데

그냥 네가 너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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