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미뤄 두었던 마음

마트에서 떠오른 마음

by dwpark

아침 일찍 새로 생긴 마트에 차를 몰고 갔다.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마트 안으로 카트를 밀고 들어서니 환하게 펼쳐진 매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넓은 공간에는 가지런히 진열된 상품들이 깨끗하게 놓여 있었다.


우선 살 물건들이 놓인 곳으로 향했다. 가격부터 꼼꼼히 살펴보고 스마트폰으로 검색도 해본 뒤, 적당하다 싶으면 카트에 물건을 하나씩 담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냉동 피자가 세 판에 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고, 종류별로 서둘러 카트에 담았다. 이런 가격에 파는 곳은 인터넷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매장 곳곳에 마련된 시식 코너에서 냄새에 이끌려 몇 가지를 맛보았다.


문득 아내가 시식 음식을 이쑤시개에 찍어 "여보 아~ 해봐" 하며 내 입안에 넣어주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아내가 없는 자리만 남아 있어 더 보고 싶었다.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 말 한마디가 못내 아쉬웠다.


먹고 있던 것을 삼겼다. 시식한 식품의 가격도 확인한 뒤 양곡 코너로 가서 쌀 20kg 한 포대를 들어 카트에 올려놓았다.


새로 문을 연 마트라 다양한 상품을 할인된 가격으로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오픈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되었다. 주변에 마트도 질세라 비슷한 가격으로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는 이런 할인행사가 우리 같은 소비자에게는 참 반가운 일이었다. 그리고 소비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계기이기도 했고, 생활비 절약에도 큰 도움이 되어 좋았다.


그러다 즉석조리 코너로 가서 메뉴를 살펴보니, 치킨, 족발, 김밥, 떡볶이 등 다양한 음식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 사 먹고 싶어졌다.


치킨 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그때 고향 마을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런 내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중국집도 없었다. 간식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밥만 먹고살았다. 엄마는 농사 일로 늘 바쁘셨다. 자식에게 신경 쓸 시간도 많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나는 군것질을 많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야 조금씩 먹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전까지는 즉석조리 음식을 대형마트에 가서 자주 사 먹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대형마트에서 사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보기에는 더 가성비가 좋아 보였다.


내일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조리 음식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불고기, 갈비, 제육볶음, 닭갈비가 진열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괜히 먹고 싶어졌다. 보기만 해도 소주 한 잔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소불고기 두 근을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음료 코너로 가서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제로 음료와 막걸리 한 통을 집었다. 술은 누가 볼까 싶어 서둘러 카트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내 옆으로 부부가 카트 밀며 지나가는 모습이 왜 그리 부러운지, 질투가 났다. 늘 혼자서 마트에 오는 것이 습관이라 잘 느끼지 못했지만, 오늘따라 더욱 외로웠다.


마트에서는 삼겹살과 목살을 초특가로 판매하고 있었다. 이런 가격이면 먹거리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근씩 포장하지 않고, 반 근씩 담아 한 팩 값으로 두 가지를 모두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문득 옛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안 행사가 있으면 서울에 있는 시장에 가서 장을 봐 오셨다. 시장에 가려면 버스를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타고 가셨다. 어머니는 장바구니 하나 없이 보자기에 넣어 한 손에는 들고, 또 머리에 이고 집으로 오셨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이제는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는 세상이 되었다.


갑자기 안내 방송이 매장 안으로 울려 퍼졌다. 깜짝 할인 행사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정육코너 쪽으로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오전이었지만 매장은 북적이고 있었다.


나도 할인 행사를 하는 곳으로 가 보려고 싶어 천천히 걸어갔다. 소고기 등심을 그램당 믿기 어려운 가격으로 할인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비싼 사 먹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는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카트에 소고기 등심 한 근을 담았다. 뭐 빠진 것 없는지 마트를 한 번 더 둘러본 뒤, 카트를 밀어 계산대로 와서 물건 값을 신용카드로 결재하고 나왔다.


주차장으로 와서 차에 산 물품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마트에서 빠져나왔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 햇살이 앞 유리를 스쳐 들어와 얼굴을 스치듯 비추고 지나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트에 와서 필요한 물건과 평소 사려고 했던 것들을 싸게 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 햇살을 맞으면 길을 나서니 괜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평범할 것 같던 하루도, 이 작은 행복도 그 빛 하나로 나를 더욱 기분 좋게 만들었다.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주차를 하고 사 온 물건들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왔다.


장바구니에서 물건을 꺼내 정리하며, 저녁에는 소주 한 잔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 할 생각을 하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소고기를 구워 맛있게 먹을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그러다 문득 소고기를 한 근조차 부모님께 제대로 사 드리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드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한 근보다 못한 내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나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노을이 보인다.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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