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 것은 시간만이 아니었다

책상 밑에 컴퓨터

by dwpark

내 방 책상 아래에 좀 오래된 컴퓨터가 있다. 이 컴퓨터는 새로 구매한 것은 아니다. 중고 부품을 여기저기 얻어 조립해 만들었다.


조립한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실행하니 잘 작동했다. 퇴근 후 부업을 위해 컴퓨터를 활용하려고 했었다. 반찬값이라도 벌어 보려고 했지만, 계획처럼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이 컴퓨터로 많은 일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퇴근하고 와서 집안일을 하다 나면 지쳐서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컴퓨터에 먼지만 가득 쌓인 채 책상 밑에 있었다.


오늘은 주말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거실로 나가니 햇살이 베란다 창문을 통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그 햇살은 레이저처럼 베란다 바닥에 비쳤다.


집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벤치에 앉아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셨다. 주말이면 늘 마시던 공기는 오늘따라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 나뭇가지에 앉아 우는 새를 보았다. 조그만 새는 나만 보면 더 슬프게 우는 것 같았다.


집으로 올라갔다. 거실부터 청소를 했다. 이곳저곳에 먼지가 많이 쌓여 있어 털어냈다. 머리카락도 많았다. 한참을 닦았다. 그렇게 집안 구석구석의 먼지를 털고 닦으면 힘은 들어도 마음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오래된 물건이 참 많이도 있었다. 그 물건을 하나하나 보니 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결국은 버리기 싫은 핑계가 너무도 많았다.


결혼 후 분가를 시작으로 세 번의 이사를 했고, 그때마다 많은 짐을 버렸다. 첫 번째 이사는 아내와 함께 했다. 아내는 잘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끝내 버리지 못한 짐도 있었는데, 그중에는 아내의 것이 많았다.


아내의 빈자리를 생각나게 하는 짐들을 나는 몇 해 동안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정리를 해서 버리려니 아쉬웠다. 또한 죄를 지은 듯한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짐들 속에 아내가 입었던 옷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가끔 그 옷의 냄새를 맡아보곤 했다. 그 냄새는 그리움 속으로 이끌곤 했다.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한참 지났다. 잠시 쉴 겸 커피를 타서 거실 소파에 앉아 마셨다. 아내도 커피를 좋아했다.


책상 밑에 먼지 덮인 컴퓨터만 청소하려고 했었다. 그러다 방 안 짐들도 끄집어냈다. 아내와 교회를 다니면서 적었던 수첩을 보았다. 이제는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


성경책도 있었다. 책에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다. 오랜 시간 꺼내 보지 않았다. 그 시절 아내와 새벽에도 저녁에도 기도를 하러 갔었다. 기도하면서 희망을 생각했었다.


교회 요람이 보였다. 그 요람 속에는 아내 사진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래에는 내 이름도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아주 오래된 교회 요람에는 아내가 있었다.


35년 전 물건도 있었다. 군 훈련병 시절에 수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잠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수첩에 적은 글을 읽었다. 글 속에 어린 군인은 힘들고 배고프다는 얘기만 적어 놓았다. 짐 속에는 병역증과 군번줄도 있었다.


그렇게 방 안의 낡은 짐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었다. 버릴 것, 버리지 말 것을 구분하면서 정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미련 때문인지, 나는 그 물건들을 보관만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시절이 아쉽고 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건을 볼 때면 기억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스마트폰들이 눈에 띄었다. 그 폰을 생각하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스마트폰 속에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비밀처럼 감춰져 있었다. 잠겨 있던 아이들과 아내의 사진들을 풀어보았다. 사진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듯 나를 보고 웃었다.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아내와 등산을 하면서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 아내는 너무도 밝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정리를 하니 석양이 창문을 통해 비쳐 들었다. 오전에 베란다 바닥에 비추던 햇살은 서서히 지워져 갔다. 세월은 반복적인 것이 아니다. 햇살은 반복적이다. 매일매일 똑같이 시작하고 마무리된다.


방 안의 모든 짐을 완벽하게 정리하지는 못했다. 책상 아래 컴퓨터를 실행해 보았다. 모니터 화면이 환하게 밝아졌다. 잠시 컴퓨터로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그냥 놔두면 먼지만 가득 쌓일 테니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내어 일기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니 먼지만 쌓여 있는 물건들처럼, 나에게도 행복이라는 추억과 기억이 많이 쌓여 있었다.


짐들을 정리하듯, 내 인생의 모든 추억과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버리지 않고, 순간순간들을 정리해 놓아야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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