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이면

사고의 재구성 1

by dropfairy
"서울양양고속도로 상남 7 터널에서 그랜져 추돌... 1명 사망 2명 중상
(중간 생략)
그랜져 승용차가 터널 벽과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내 교통사고 건이 검색되는지 확인 차 입력해 봤더니 나온 기사이다. 내가 낸 교통사고는 기사화되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동일 차종으로 터널 벽과 추돌한 나는 살아있고 누군가는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얼마나 무서웠을지, 남겨진 가족과 친지들의 아픔은 어땠을지 저릿하고 먹먹하다.






사고일로부터 한 달 후, 동일 경로를 같은 차로 운전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아침시간이었고 100킬로 이상 거의 속도를 내지 못했다. 터널로 들어갈 때마다 몸이 앞으로 숙여지고 터널 길이가 길수록 가슴의 답답함이 커져갔다.


며칠 전 보험회사에서 보상종결 안내 알림톡을 받았다. 보험금지급내역서를 보니 "사고일시 : 25년 8월 22일 20시 50분, 사고장소 : 강원 인제군 상남면 1, 사고내용 : 자차 터널 주행 중 미끄러지면서 화물차 충격 후 터널 벽면 접촉하여 좌우측 앞부분, 뒷부분 파손"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곧 12년이 되는 이 차를 운행한 거리가 현재도 4만 4천 킬로 정도이다. 차를 사게 된 이유는 갓 초등학생이 된 아들 때문이었다. 아이를 보란 듯이 번듯하게 잘 키워보고 싶은 욕심에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이후 처음으로 참석한 학부모 모임에서 내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괴감을 받았다.


다들 자상한 남편, 좋은 차, 명품가방 등을 가졌는데 나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초라해 보이고 아들이 주눅 들까 봐 속이 상했다. 마침 만기가 된 적금으로 차라도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사립초등학교 학부모처럼 보이고 싶었다.


파노로마 선루프에 풀옵션을 장착한 그랜져를 끌고 외숙모가 결혼 선물로 주신 P사 가방을 들고 두 번째 학부모 모임에 참석했다. 새 차에 명품 가방으로 치장을 하면 나와 내 아이가 좀 더 밝아 보일 것 같았다.


남편얘기, 시댁얘기, 사업얘기 등 학부모 모임에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별로 없었다. 그때부터 모임에 가면 80%는 듣고 20%는 호응하는 걸로 내 포지션을 정했다. 괜한 말을 해서 내 아이가 아빠가 없고 나는 남편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흰둥이'라고 이름 붙인 차를 끌고 아이가 아플 때, 아이와 여행을 갈 때, 학부모 모임에 갈 때, 운동하는 아이를 픽업할 때마다 신나게 운전을 했다. 동분서주 부지런히 아이를 케어하는 모든 일정에 운행을 했는데 10년이 넘은 차가 4만 킬로 대라고 다들 놀란다.






길치에 방향치인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운전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서 자취를 할 때 아무리 열쇠를 돌려도 문이 열리지 않아 주인집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집 앞에 아무도 없는데? 혹시 반대쪽 맨 끝집 문 앞에 있는 사람이 아가씨야? 우리 집은 정반대 쪽 끝집이야."라고 전화기 너머 주인아주머니가 말하셨다.

100미터쯤 떨어진 곳인데도 빨개진 내 얼굴이 보일까 봐 손으로 최대한 얼굴을 크게 가리고 종종거리며 이동했다.


그때가 이사 온 지 5일 정도 됐을 때였고 초저녁에 맨 정신이었는데 열쇠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내가 남의 집 대문 앞에 서 있을 거라고는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가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함께 병원을 갈 일도, 여행을 갈 일도, 학부모 모임에 갈 일도 없고 아이를 픽업할 일도 대부분 없어졌다. 차를 운전할 마땅한 일들이 없어졌다.


가끔 외식이나 쇼핑을 위해 운전을 하려다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보험회사에 연락을 한 적이 있고 배터리 교체만 세 번을 했다. 주차장에서 뿌옇게 잠들어 있는 내 차를 의도적으로 움직여야겠다고 고민하게 됐다.






"엄마도 등산 동호회에 가입해서 여러 사람들이랑 다른 산도 가봐."


길치에 방향치라 다른 산은 못 가고 오로지 집 앞 '천마산'만 혼자 오르내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답답했는지 아들이 제안했다.


"등산 동호회는 불륜이 많대. 안 가."라고 대꾸해 놓고 다음날에는 등산 동호회를 찾아봤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했다가 생각해 보면 또 괜찮을 것도 같고 그래서 마음이 바뀌는 걸 보면 "내가 팔랑귀인가?"하고 갸우뚱하기도 한다.


등산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을 한지 곧 1년이 된다. 이 동호회는 신기하게 안 하는 게 없다. 등산은 기본이고 트레킹, 스키, 서핑, 캠핑, 문화벙, 먹벙 등이 끊이질 않는다. 동호회에 나가면서 최소 1~2주마다 한 번은 차를 사용하게 됐다.


차를 운전할 일이 다시 생겼다. 지난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봄과 가을에는 캠핑을 하러, 여름에는 서핑을 하러, 내가 가려는 모든 경로에 차가 필요해졌다. 방치됐던 차가 이제는 중요해졌다.


20년 이상 운전을 하면서 교통사고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의 차는 절대로 접촉하지 않겠다며 반대쪽으로 붙어서 돌다 주차장 벽면에 차를 긁기도 하고 후진하다 돌이랑 나무 등은 박았지만 다른 차와 충격한 적은 없다.






"폐차를 해야 하나? 그러면 중고차를 살까? 할부로 새 차를 살까? 차가 없으면 카풀을 해볼까?" 가지 치는 생각을 하다 차를 수리하기로 했다.


사고당시 브레이크가 듣지 않고 핸들도 제멋대로 움직여서 차량 결함을 우려했다. 그런데 레커차 기사님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게 아니라 미끄러진 거예요. 바닥을 보면 젖어 있잖아요. 여기가 한 달에 한번 정도 이런 사고가 나요."라고 태연히 말해주셨다.


그리고 이틀 후 전화를 다시 한번 주셔서 차가 오래됐지만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으니 보험으로 수리하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니 작년에 타이어도 교체했고 아직 아들 등록금에 용돈도 챙겨야 하는데 당장 새 차를 구입하는 건 시기상조인 것 같았다.






3주 만에 영영 못 보는 줄 알았던 차가 말끔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상처 하나 없는 멀쑥한 자태로 처음 만났던 모습처럼 매끄럽게 서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서서히 핸들을 이동시켰다. 엔진음 소리, 찌이익 바퀴 소리가 증폭기를 댄 듯 크게 울렸다.


"내가 다시 운전할 수 있을까? 사고가 또 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또 사고가 나면 그때도 내가 무사할 수 있을까? 운전하지 말까? 무섭다. 무섭다......"


수리된 차를 끌고 집 근처 대형복합쇼핑몰로 향하면서 내내 이럴까 저럴까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그러다 터널에 진입하니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갑갑함이 차올랐다.


도로의 울퉁불퉁함, 비스듬함, 맨들 거리는 상태가 핸들과 브레이크를 통해 고스란히 내 손과 발에 전해졌다. 노면이 탄탄한지, 부석이는 지 미끄러운지 모든 촉각을 세워 감지하고 있었다.


앞 차와의 충분한 간격을 유지하느라 내 앞으로 차들이 수차례 끼어들어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되도록 2차선으로 달리고 비가 많이 오면 멈춰가는 걸 선택했다.


갑자기 어제까지 도로주행 강습을 받다 온 초보 운전자가 된 것 같았다. 어깨와 목이 딱딱해지고 눈이 뻑뻑하게 굳어가는 착각이 들었다. 딱 한 가지 좋아진 건, 티맵 운전점수가 40점대에서 사고 이후 96점이 됐다.






사고가 난 지 3주 만에 다시 운전을 하고 한 달이 조금 지나 사고가 난 동일 장소를 지나갔다. 피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나는 평소의 습관에서 벗어나 왜 저녁에 운전을 했고 왜 어두운 터널에서 과속을 했는지 반추해야 할 것 같았다.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내 안에서 끄집어내기 창피한 지극히 감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불안하게 기대하는 마음과 유치하게 드러난 초조함이 "운이 나빴다."라고 표현하는 이 교통사고의 바닥에 깔려 있었다.


정확히 35일 전에 단단히 엉켜버린 실타래를 마주하기 위해 같은 경로 동일 목적지로 짐을 꾸렸다. 얼기설기 엮인 뭉치를 풀어낼 것인지, 그대로 놓고 떠날지, 조금 더 관망할지 답을 고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