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가 되기로 했다

운을 선물하다

by dropfairy

"돈 쓰고 욕먹는 사람 봤니?"


엄마가 신났다. 몸에 안 좋은 거 안 먹고 남의 입에 오를 언행을 극도로 조심하는 분인데 막걸리 한 병을 먹더니 더 먹자고 하신다.


노심초사한 남편이 무사복귀한 안도의 기쁨과, 서툰 간병에서 벗어난 해방의 기쁨이 잔을 부딪히기 시작했다.

수술 후 실밥까지 제거한 아버지를 3주 만에 시골집에 모셔다 드리고 엄마와 둘이서 술을 마셨다.


"네 아빠는 호구야. 옆에서 부추기면 다 써. 그러면 사람들이 고맙다고 할 것 같니?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우습게 보고 뒤에서는 욕해."






이번 아버지 병원행에 엄마는 동행하지 못했다. 예약이 잡힌 날, 엄마는 무대에 서야 했다. 47년생 돼지띠인 엄마가 라인댄스 공연단의 왕언니다. 공연 영상을 보니 글리터 상의를 입고 가운데 세 번째 줄에 서 계셨다. 경력도 가장 많고 나이도 제일 많은데 맨 앞 줄이 아닌 게 딸 입장에서 살짝 걸렸다.


"나보고 맨 앞자리 가운데 서라고 해서 한사코 안 한다고 뒤로 갔어. 다들 주인공이 되고 싶은데 나야 그동안 많이 했으니 이제 젊은 사람들 시켜줘야지. 네 아빠도 총무자리 회장자리 다 내놓으라고 했다. 나이 먹어서 욕심부리면 보기 안 좋아. 옆에서 아무리 추켜세워도 스스로 물러나야지."


"잘했어 엄마. 나이 먹었다고 괜히 대접받으려 하고 앞에 서려하면 추해. 알아서 물러나주고 젊은 사람들 돋보이게 해 줘야 진짜 대접받는 거지."


"당연하지. 젊은 사람들이랑 어울리려면 나서지 말고, 말을 줄이고 돈은 써야 해. 젊은 사람들한테 받는 에너지가 얼마나 좋은 건데."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유하다고 소문이 난 분이기도 했지만 또래나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모임에서는 돈을 굳이 쓰지 않는단다. 다만 어린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당연히 돈을 써야 한다고 했다. 젊을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때는 값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돈을 아무 때나 쓰면 호구되는 거야. 네 아빠는 누가 밥 사라고 하면 밥 사고 술 사라고 하면 술 사고 시도 때도 없이 쓰니까 호구지."


"아빠가 그랬어? 나랑 비슷한데? 내가 왜 호구인가 생각했는데 아빠 닮아서 그런 거구나. 엄마 말 들어보니까 아빠랑 나랑 똑같네."






고등학교까지 광역시에서 다니다 대학 진학을 하면서 서울에 처음 왔다. 학식을 먹다가 가끔 동기들과 캠퍼스 밖에 있는 중국집이나 양식집에 가면 항상 내가 계산을 했다. 맛있게 밥을 먹고 나오기 직전이 되면 즐겁던 분위기가 딱딱해지는 게 싫었다. 무거운 공기를 가볍게 전환시킬 수 있는 말이 "내가 살게"였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더치페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다. 계산할 때가 되면 서로 내겠다고 앞다투는 게 일상이었다. 화장실 가는 길에 먼저 계산하고, 주문하고 바로 계산하고 우선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우선권을 뺏기는 날에는 무엇이든 어떻게든 더 챙겨주려고 했다.


더치페이가 삭막하고 어색하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각자 돈을 내서 먹을 거면 왜 같이 먹냐는 생각이 들어 미리 결제를 했다. 처음에는 "고맙다", "안 그래도 된다", "다음에 사겠다"라고 했던 동기들이 나중에는 "잘 먹었다"는 말만 했다. 과수석 입학으로 면제받은 등록금을 아버지가 용돈으로 주셨다. 그 돈으로 동기들 밥도 사고 술도 사는 호구가 되었다. 나중에 돈이 거의 떨어져 선뜻 사기 힘든 상황이 되자 동기들은 각자 내자고 했다.


지금도 누군가와 처음 만나면 대개 내가 비용을 낸다. 이후 상대방이 계산하려고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 이 선을 갖기 전까지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많게는 다섯 번까지도 내가 일방적인 지불을 하고 씁쓸한 기분으로 내적 단절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이 돈을 안 쓰는 게 돈이 정말 없어서 못 쓰는 줄 알았다. 정기적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비싼 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구입하면서 나에게 쓸 돈만 없다는 걸 몰랐다.


마흔이 넘어서도 로드샵 화장품을 쓰고 몇 만 원대 가방을 들고 액세서리로 목걸이 두 개가 전부인 내가 돈을 쓰는 곳은 정해져 있다.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사람, 고마운 사람, 주고 싶은 사람을 챙기는데 쓴다. 엄마도 일면에서는 나와 아버지랑 비슷하다. 본인을 위해서는 만 원짜리 옷도 잘 못 사는 엄마가 술을 드신 김에 술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반장이 라인댄스 선생님 생일이라고 만원씩 걷어서 챙겨주자고 하는데 7명이라 7만 원밖에 안되잖아. 내가 더 낸다고 10만 원 채워 주자고 했어."

"부녀회 경로잔치 때 음식 장만하느라 총무가 고생하더라. 재료비에 보태라고 따로 30만 원 냈어."

"어버이날 행사 준비한다고 젊은 사람들이 애를 많이 쓰더라. 끝나고 먹으라고 10년 넘은 약술이랑 50만 원 줬어."

"네 아버지 맨날 차 태워주시는 친구분한테 맛있는 거 사 드시라고 엊그제 10만 원 드렸어."


얘기를 듣다 엄마가 나와 아버지랑 다른 점을 발견했다.

"가끔 가는 노래교실이 있는데, 강사 생일날 줄 돈이 부족하다고 나 들으라는 것처럼 말하잖아. 그때는 귀 딱 닫고 모른척했어. 자기 선생님은 자기들이 챙겨야지 내가 돈을 왜 내냐? 그럴 때 돈 쓰면 호구 잡히는 거야. 돈을 아무 때나 쓰면 돈 쓰고도 좋은 말 못 들어."






고등학생 때부터 내 꿈은 강한 사람이 되는 거였다. 강한 사람이 되어 맨날 져 주다 꼭 이겨야 할 때, 꼭 이기고 싶을 때만 지지 않으려 했다. 이기고 싶어 악물고 덤벼도 어쩔 수 없이 지게 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했다. 되도록 강한 사람이 되어 되도록 많이 져 주고 나보다 약한 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가끔, 일부러 호구가 된다. 내가 손해를 보면 상대방은 이익을 볼 테니 누군가에게 '운'을 선물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퍼석한 얼굴에 무거운 그늘이 자욱할 때, 저벅거리는 걸음이 터덜터덜 흔들릴 때, 떨고 있는 눈빛과 손끝이 따스함을 갈망할 때. 그 순간을 보았을 때 호구가 되고 싶었다. 기꺼이 져 주는 약자이며 넉넉히 퍼 주는 호구가 되기로 했다.





사회 초년생일 때 당장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해서 돈을 빌려줬더니 6개월 동안 찔끔찔끔 갚던 동료가 있었다. 돈이 너무 없어서 못 갚는 줄 알았는데 건강음료를 매일 회사로 주문해서 먹고 고가의 펌을 하고 유명 맛집에 다녀온 사진을 자주 업로드했다. 늘 돈이 없다고 했던 말이 "본인에게 쓸 돈밖에 없다"는 말인 줄 몰랐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인색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학 동기, 회사 동료면 돈을 써도 되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허튼 말이라도 누가 밥 사라고 하면 사고, 술 사달라고 하면 사주는 사람이 나였다. 나중에는 이용당했다는 자괴감에 스스로 벽을 만들고 관계를 차단했다. 돈을 쓸 만한 괜찮은 사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써야 했다. 돈 안 쓰는 사람치고 괜찮은 사람 없다.






"술을 왜 먹는지 오늘 알겠다. 안 좋은 거라고 안 먹으려고만 했는데 술 먹고 별 얘기 다 했네."


"집에서 딸이랑 먹는 건데 좀 취하면 어때? 맘껏 드시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기분 좋으면 되지."


엄마가 이렇게 술을 잘 드시는 줄 처음 알았다. 막걸리 한 잔,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 술은 딱 한 잔씩만 드셔서 술을 못 드신다고만 생각했는데 얼굴 빨개질까 봐 혹여 언행에 실수가 생길까 봐 안 드셨단다. 월출산 다녀온 길에 사들고 온 막걸리 세 병을 모녀가 나눠 마시고 같이 취해 웃음꽃이 만발했다.


이렇게 오래 마주하고 이렇게 오래 대화한 적이 없던 엄마가 발그레한 볼을 손으로 감싸며 끝맺음을 하셨다.


"그래도 베푼 게 많으니 돌아오는 것도 있긴 하더라. 나중에는 다 네 아빠 좋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