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낫다

우정과 사랑 사이

by dropfairy

천성이 겁이 많다. 굽이진 바닥을 흘겨봐도 멀미가 났다. 높이 오를수록 마디마디 숨이 막히고 말초신경까지 곤두섰다. 내릴 때가 다가오자 나 때문에 리프트가 멈추었던 부끄러운 장면이 떠올랐다. 출발선에 서서 상급 슬로프를 응시하니 끝이 낭떠러지처럼 아득하다.


평온한 아이를 먼저 내려보내고 A자로 발을 모아 최대한 옆으로 향했다. 허둥지둥 롱턴을 하다 튜닝차처럼 스쳐가는 소리에 놀라 혼자 넘어졌다. 부지런히 따라가다 속도가 붙으면 스키가 벗겨지고 나뒹굴었다. 스키를 줍기 위해 오르막을 어기적대며 올라갔다. 그새 부츠에 눈이 얼어 스키를 맞춰 끼우는 것도 고역이다. 멍자국이 묻어 나온다면 하얀 설원이 얼룩덜룩 보랏빛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올해 첫 스키를 타고 왔다. 혼자 다녀왔다. 혼스킹을 한 적이 과거에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는 스키를 곧잘 탔다. 세 번 강습을 받은 후 최상급 코스를 타고 점프도 했다. 밸런스가 좋고 소질이 있다며 강사님이 치켜세웠다. 스키선수가 되는 게 어떻냐는 제의에 아이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스키는 취미로만 타겠다는 발언이 강사님이 찍어주신 동영상에 담겨있다.


아이와 둘이 스키장에 갔다. 강습비가 아까워 눈대중으로 익힌 내 실력은 초중급인데 아이는 상급을 타야 한다. 저 높은 꼭대기까지 아이 혼자 태워 보낼 수 없다. 상급자 리프트에 같이 올랐다.


강습을 계속 시키기는 부담되고 아이와 같이 상급자 리프트를 타 줄 어른이 간절했다. 아무도 없다. 내가 해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아이가 학원에 간 시간에 혼자 스키장에 다. 중급 코스로 연습하다 기어코 상급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아찔하고 어지럽다. 굼뜨게 턴을 하며 주눅 들고 움찔대다 주저앉았다. 싫어도 해야 할 일이라 당장은 참아보기로 했다.




2주 후 아이와 스키장에 왔다.


"나 중급 탈래. 중급도 탈만해." 아들이 먼저 말했다.


상급을 타자고 설득했지만 아이가 중급을 타겠다고 한다. 절충하듯 중급과 상급 사이에 있는 중상급 리프트에 나란히 올랐다.


"엄마 먼저 내려가." 아들이 별안간 나보고 앞서 가란다.


아들의 리드에 쭈뼛쭈뼛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리 바라보며 가장 경사가 완만한 곳을 골라 내려갔다. 눈보라를 일으키는 보더도, 바람처럼 질주하는 스키어도 없다. 높은 하늘과 맞닿은 너른 벌판이 유독 고요하고 아늑하다. 차갑고 미끄덩대던 눈이 새삼 포근하고 보드랍게 와닿았다.


가장자리에 멈춰 서서 힐긋 위를 올려봤다. 내가 지나온 길 그대로 두 템포 간격을 두고 아들이 뒤따라왔다. 내가 낸 길 위로 아이의 스키 자국이 겹치고 있었다. 주위에 부산한 소음과 부석거림이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8살 아이가 내 뒤를 지키고 있어 누구도, 무엇도 나를 위협하지 못했다.


"내가 있으니까 안 무섭지?"


그 겨울 내내 아이가 나를 지켰다. 두려움이 사라지니 동영상과 책에서 공부한 스키 기술을 연습할 여유가 생겼다. 무게중심을 옮기고, 에지를 사용하고 업다운을 반복하며 조금씩 A자에서 패러렐 턴으로 바뀌고 있었다. 스키가 재밌다. 꿈에서도 활강을 하며 아들과 스키를 타러 갈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되었다.






"엄마랑 아이랑 둘이만 여행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아빠가 없고 남편이 없는 걸 모두가 눈치챌 것 같아 아이에게 물었다.


"뭐 어때?" 만난 지 여섯 해가 지난 아이가 답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불쌍하게 쳐다보면 어떡해?" 소심한 엄마의 발언에 아이가 다시 말했다.

"뭐 어때? 상관없어."

주저, 걱정이 다 사라졌다. 아이가 상관없다는데 엄마가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 주는 여행을 가고 한 주는 도서관에서 놀고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걸 몽땅 했다.


겁쟁이에 지나치게 상처받던 여자가 중요치 않은 시선과 별 것 아닌 소란에 개의치 않는 여자로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설레는 겨울을 보낸 이듬해부터 스키를 타지 않았다. 아들은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고 부상 위험 때문에 다른 운동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엄마도 더 이상 스키를 타지 않았다. 운동과 학업 뒷바라지에 겨를이 없었다.


아이의 대학 입학 통지를 받고서야 스키장에 갈 생각이 들었다. 동호회에 가입해서 낯선 이들과 함께 탔다. 타인에게 맞추기 위해 상급자 리프트에 올랐다. 스키를 안 탄지 10년도 넘었는데 상급자 슬로프를 내려오자니 다시 무서워졌다. 스키가 재밌지 않다. 혼자 타야겠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혼자 가야겠다.




마음을 나누는 이가 아니라면, 대화를 할 만한 이가 아니라면 굳이 동행하고 싶지 않다. 내 편이 아닌 타인과 어울릴 때는 피로감이 커진다. 의미 없이 웃고 떠든 후에는 공허할 때가 많다. 습관이 된 공감과 잡담으로 채운 시간이 못내 아쉽다.



침묵이 낫다.



내 음성과 생각으로 나 자신과 소통하는 게 낫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즐기고 싶다. 대화할 이가 없으면 글을 쓰고 동행하고 싶은 이가 없으면 혼자 간다. 우울한 감정이 올라오면 우정을 나누는 이에게 연락을 한다.


"시험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랑 스키 타러 갈래?" 문자를 보냈다.


"좋지." 아들의 답은 간결하고 정확하다.


아이와 나 사이에 우정이 있다. 우정과 믿음은 결국 같은 말이다. 믿음이 있어야 우정이 생기고 우정의 두께만큼 믿음이 견고하다. 탓하거나 서운해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혈육의 연을 맺고 20년을 같이 살면서 서로의 존재로 우리 관계는 완성되었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 우리가 있다. 나를 알고 나를 믿고 나의 모두를 사랑하는 변함없는 네가 있다. 너를 알고 너를 믿고 너의 전부를 사랑하는 한결같은 내가 있다. 우정이 깊으면 사랑이 깨지지 않는다. 평생 같은 편인 제일 친한 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