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하려고 입은 거야

나이답게

by dropfairy

"엄마 여깄다."


N호텔 주차장 한구석에서 허겁지겁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끝마을 근방의 리(里)에 거주하는 부모님은 근처에 사는 외삼촌 친구분 차를 타고 결혼식장에 오신다고 했다.


"그렇게 불렀는데 이제야 보니? 여기는 외삼촌 친구분이셔."


"부모님 모시고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도 올라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외삼촌 친구분은 외삼촌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300킬로에 육박하는 길을 선뜻 동행해 주셨다.




"교감선생님이 너보고 깜짝 놀라더라. 옷도 추레하게 입은 여자를 보고 딸 아니냐고 해서 아니라고 했는데 계속 그런 여자들 보고 딸 아니냐고 묻지 뭐니?"


너를 보더니 "딸이에요?"라고 깜짝 놀라더라.


"우리가 시골 사는 노인네라 딸도 촌스러울 줄 알았나?"


결혼식장에 차려입고 온 딸이 맘에 드는지 같은 말을 반복하며 엄마의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는다.




십여 년 만에 친척들과 제대로 만나는 첫 행사였다. 2007년도 1월, 그 사건으로 집안 최초의 불효녀가 된 이후 일가친척 모임에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이혼한 지 10년도 넘었고 고등학생 엄마쯤 되니 더 이상 창피할 것도 없다. 뭐 어때, 혼자서도 잘 살았다고 앞으로는 인사라도 하며 살기로 했다.


십 대 후반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복장으로 좀 지나친가 싶은 생각도 했다. 노랑과 파란색 꽃무늬가 프린트된 어깨부터 시스루인 옷을 입었다. 밴딩으로 허리를 조이고 허벅지가 살짝 드러난 캉캉 스타일 원피스는 21세기 무도회장 복장으로도 이상하지 않다. 여기에 9센티 토오픈 힐을 신고 허리까지 오는 볼륨매직 머리카락을 찰랑거렸다.


어릴 적 같이 놀던 사촌 동생이 "누나는 결혼하셨어요?"라고 물었다. 주변에 있던 친척들이 다 같이 웃었다.


"누가 고등학생 엄마라고 보겠어? 다 아가씨인 줄 알지." 숙모의 말에 엄마가 흡족해하셨다.






"하나도 안 야해. 이 정도는 입어야지. 예쁠 때 입어야지."


내 눈에는 야한데 엄마는 괜찮다며 자꾸 입으라고 하신다.


스물셋, 얇은 끈 하나로 어깨와 쇄골을 노출하고 허벅지를 반쯤 드러낸 원피스를 입고 집 밖을 나섰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쇼윈도에 비춰보니 생각보다 이상하진 않다. 남자들이 확실히 친절해졌다. 친한척하는 여자들이 조금 더 생겼다. 내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든 섹시함은 그와 별개의 강력한 무기임을 알게 됐다.


새내기 초반에 복학생 선배로부터 '색기가 있다', '눈빛이 야시시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충격적이고 불쾌하고 생각할수록 수치스러웠다. 면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은, 아직 '학생'이라고 불릴만한 아이에게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수백수천 번 내 행동을 되짚어보고 내 눈빛을 관찰했다. 연애는 당연히 안 해봤고 소개팅, 미팅을 해본 적도 없고 지금껏 남자 손 한번 안 잡아 봤는데 억울했다.


휴학 중 첫 사회생활을 하면서 투피스 치마 정장을 구입했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어정쩡한 기장에 특별한 패턴도 장식도 없는 밋밋한 옷이었다. 검은색 재킷 안에 흰색 셔츠를 입고 원버튼 단추를 채우면 가슴이 부각되고 허리가 잘록해 보였다. 치마에 어울리는 하이힐까지 신으니 제법 커리어우먼 같다. 이제는 학생티가 좀 벗겨진 것처럼 보였다.






"엄마 엉덩이 괜찮니?"

"어. 괜찮아."


본 듯 만 듯 심드렁한 답이 온다.


"나이 들면 엉덩이가 없어. 레깅스 입고 나가도 안 창피하겠어?"


"어. 운동할 땐 괜찮아."


긴 상의로 엉덩이를 덮고 레깅스를 입었는데도 거리 두기에 진심이던 아들이 다시 힐긋 보며 말한다.


많이 봐서 무뎌진 건지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에 격려 차원인지 이제는 별 싫은 기색이 없다.


짧은 상의, 하이웨이스트 레깅스가 이제 내 운동복이 되었다.






두 달 전, 여든이 넘은 아버지께 문병 가면서 크롭티에 청바지를 입었다. 간호사분들과 주변 환자분들께 간식을 나눠드리며 대학생 아들과 함께 인사를 드렸다.


"딸이 아가씨 같고 손주는 배우 같다고 간호사들이 수군대더라."


고령에 큰 수술을 하고도 차도가 월등한 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신지 같은 말을 다섯 번도 더 하신다.




새벽 5시 반에 눈을 뜨면 복근롤러 100개, 힙브리지 100개, 와이드스쾃 100개부터 한다. 출근하는 동안 일부러 계단을 찾아 걸어가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면 10미터 뒤에서 뛰어간다.


30대였을 때, 거나하게 술이 취한 아버지가 60년 지기 친구분과 나누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내 딸은 지금도 날씬하고 아가씨 같아."




십 수년째 불효녀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고 명예나 권력도 없다. 내 몸 하나 잘 가꿔서 부모님 기를 세워 드리는 거 말고는 잘할 만한 게 없다. 19년 전에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딸이 잘 크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는 거 말고는 할 만한 게 없다.



평생 운동하고 글 쓰고 섹시할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많은데 노력하면 할 수 있으니 해볼 만한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내 부모의 딸이 불쌍하지 않고 내 아이의 엄마가 초라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강해지고 싶다. 좋은 습관이 누적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부모가 나를 보며 안도하고, 내 아이가 나를 보며 꿈을 꿀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아야 한다.



바람을 노력으로 채운 매일을 살아간다.



불효녀가 효도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고 평생 아빠 없이 키운 아이에게 사죄하기 위한 방법이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이전 15화침묵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