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가 꽃밭이 되었다

농로를 걸어가며

by dropfairy

빨리 가고픈 게 아니라 많이 보고팠다.

태어나 10년을 살았고 30년 이상 오가던 곳이었는데 찬찬히 속내를 들여다본 적이 없다.


"걸어가자."


마침 추석 연휴 내내 내리던 비가 개었다.


샛노랗게 익어가는 집 앞 농로로 길을 꺾어 초입에 들어서니 흰 목에 청자색 원피스를 입은 꽃이 가지를 타고, 넝쿨을 넘고 흙 위를 기어 만발이다.


"찍어야겠다."


연속 컷을 찍고 다시 걸어보니 라일락 치마, 라벤더 바지, 바이올렛 발레복까지 의상 맞춤을 한 꽃들이 지천이다.


"또 찍어야겠다."


간질간질 강아지풀, 송곳바늘 도깨비풀, 질퍼덕 떨어져 개미 밥이 된 봉옥, 벌레의 입자국이 허옇게 묻은 단감, 다 커서 입 벌리고 벌건 속을 내보이는 무화과까지.


"모두 찍어야겠다."


양껏 찍고 폭이 좁은 농로만 찾아 걸어가니 마을 이름들이 보인다.


‘연동‘, ’황막‘, ’ 정동’, ’ 영산‘, ‘영복‘




'영산'리. 내가 태어나고 10살까지 자란 곳이다. 언제부턴가 '농촌체험휴양마을'이 되어 내가 다녔던 분교는 민박집이 되었다.


운동장에는 연초록 잔디가 반들반들 깎여있고 사진 찍기용 나무그네와 진파란 모자이크 타일로 치장한 수영장까지 생겼다. '고무줄놀이', '비사치기', '땅따먹기', '자치기'를 하던 황토 흙바닥이 없어졌다.


초등학교 옆에는 조약돌이 가득한 얕은 개울이 있었다. 종아리까지 들어가면 다슬기와 피라미, 붕어, 미꾸라지, 가재를 누구나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나는 파닥파닥 꼬리 치는 물고기를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다. 두 손을 포개어 작은 피라미 한 마리를 담고는 요란스러운 움직임에 놀라 호들갑을 떨며 놓쳤던 기억이 있다.


제일 만만한 건 다슬기였다. 어스름 녘 맨발로 냇물에 들어가면 돌 밑에 고둥이 오밀조밀 모여 바닥이 새까맣게 보였다. 돌을 들춰내고 손바닥으로 몇 번 훑기만 해도 양손 가득 고둥을 딸 수 있었다.


다슬기를 한 바구니 잡아 탱자나무 가시까지 꺾어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탱자 가시로 고둥살을 발라 늙은 호박과 처진 양파를 얼기설기 넣고 된장물을 푹푹 끓여 내면 달큰 구수한 된장국이 되었다. 많이 먹기로 소문난 고명딸은 다슬기 살이 수북한 된장국을 연신 들이마시며 고봉밥 두 그릇을 먹었다.


냇가에서 놀다 허기가 지면 삘기를 뽑아 먹었다. 어린 시절 주욱 '삐비'라고 불렀던 삘기는 분홍 솜사탕 맛이 났다. 보들보들 여린 잎을 까서 덜 여문 하얀 속살을 베어 연한 단맛을 빼고 질겅질겅 씹어 꿀꺽 삼켰다. 잎을 접어 입술에 대고 불면 ‘삐이비’ 소리가 났다. 그래서 '삐비'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봄만 되면 찾게 되는 매일 백 개씩 먹어도 질리지 않는 나의 최애 간식이었다.

'삐비'만큼 많이 먹었던 간식이 산딸기였다. 새빨갛고 똑같이 예쁘지만 뱀딸기는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떼어내면 반지 모양이 되는 산딸기만 쏙 쏙 잘 따 먹었다. 산딸기는 젤리나 사탕에서 맛볼만한 새콤달콤 자극적인 맛 때문에 배가 차도록 먹고도 늘 아쉬움이 남았다. 한 번은 집에 가서 더 먹으려고 풀줄기에 산딸기를 꿰어 목걸이처럼 목에 걸었다. 동요까지 부르며 신나게 가고 있는데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멈췄다 조금 더 걸으니 얼굴 전체가 화끈거리고 점차 퉁퉁 부어올랐다. 윙윙윙윙 수 백 마리 벌들이 내 앞에 모여 있었다.


10살이 되어 도시로 전학을 갈 때까지 집, 학교, 학교 옆 냇가는 내 삶의 주요 반경이었다. 개울은 징검다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물장구를 치며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먼발치에서 보아도 또렷하게 훤했고 풀꽃은 장식으로 적당히 어울렸고 시냇물은 연신 재잘대며 흘러갔다.


30여 년이 지나 이십 리를 걸어 개울에 도착해 보니 꽃밭만 장관이다. 메밀꽃도 아닌 것이 수북수북 흐드러져 시냇물을 하얗게 뒤덮고 있다. 사진을 찍어 이름을 찾아봤더니 ‘고마리’란다. 어릴 때도 늘 보던 꽃이었지만 손마디보다 작은 꽃들이 커다란 군락을 이룬 것은 처음 봤다. 꽃숲에 가려 듬성듬성 보이는 물줄기는 고요하고 꽃잎만 이슬을 품어 반짝인다.


다슬기 잡던 냇가가 꽃밭이 되었다.


찬찬히 자세히 많이 보니 경운기를 타고 가던 농로도, 신나게 활개 치던 운동장, 시끄럽던 시냇가도 거기 그 자리에 줄곧 있었다. 세월이 흘러 모습이 바뀐 내가 다른 이가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