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녀의 소망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 시골에서 자랐다
“경기도가 시골이야?”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경기북부”라고 정정하면 될까.
경기 북부의 한 작은 마을.
‘수도권’이라는 말 때문에 화려한 도시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웬만한 지방 소도시보다 작았다.
조금만 날이 어두워지면 불빛을 찾기 어려웠고,
차보단 경운기가 더 많았던 곳.
그곳은 산업보다는 농업이 중심인,
고요하고, 때로는 외로운 마을이었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읍내는
5일마다 장이 열려 갑자기 활기를 띠곤 했다.
정신없이 북적이던 날과, 한없이 고요하던 날이 번갈아가던 곳.
도시 사람들은 모를 조용함과 소란스러움이 공존하는 시골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는 폭력적이었고
종교에 빠진 엄마는 현실과 멀어져 있었다.
집안의 냉랭함, 그리고 시골의 제한된 환경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도시에서 혼자 사는 삶’을 꿈꾸었다.
혼자라면, 아픔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세 가지 기억만 꺼내보아도 충분하다.
첫째, 병원이 없었다.
지금은 생겼지만, 그땐 정말 없었다.
경기북부엔 상급병원이 단 하나, 의정부 성모병원뿐이었다.
의정부, 양주, 동두천, 포천, 철원, 가평, 연천에 사는 사람들 모두
그 한 병원만 바라보고 살았다.
내 인생이 무너졌던 그때,
집 근처에 병원 하나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학교를 가지 못할 만큼 아팠던 날,
버스를 타고 30분, 내려서 10분 걷고,
마을버스로 환승해 다시 20분.
열세 살의 아이가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도착한 그날 밤,
가족은 내 장례를 준비했다.
집 근처에 종합병원 하나만 있었더라도,
그 일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둘째, 1호선.
성인이 되어 왕십리의 학교를 다닐 때였다.
첫 중간고사 날, 열차 고장으로 지각을 했다.
다행히 교수님이 이해해 주셨지만,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 게으름도, 내 실수도 아닌 일로
인생이 어그러질 수도 있구나.’
셋째, 첫 출근 날.
대기업 계약직으로 들어가 설레던 그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면 충분히 여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도, 열차는 또 고장 났다.
첫날부터 지각이라니.
그때의 분노는, 정말 세상을 다 부수고 싶을 만큼이었다.
나는 독립을 꿈꿨다.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이 내 생존이자,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