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좀 더 귀여웠을지도 몰라.

개구쟁이의 근엄함과 귀염둥이의 무뚝뚝함 그 사이.

by 리하루

도대체 누구를 닮았을까?

남편과 둘째를 보며 매일 하는 말이다. "딸이라 그런가, 정말 애교가 남다르다."


첫째도 아들이지만 애교가 많았던 아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둘째는 달랐다. 둘째 특유의 귀여움일지도 모르지만 도저히 아들은 따라갈 수 없는 귀여움이 장착되어 있다.


밥도 잘 먹고, 춤도 잘 추고, 걷는 것 자체에서 애교가 철철 흘러내린다.


남편은 아무래도 날 닮은 것 같다고 말한다. 첫째의 장난기는 본인이고 둘째는 무조건 나라고 말한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그렇게 애교를 부려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꽤나 귀여운 아이였을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귀엽고 싶었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그냥 그럴 수 없었던 것뿐인 환경에 놓여있었을 뿐이라는 걸.


결국 환경이 결정한다.

우리 집 까불이를 보면 타고난 특유의 뺀질거림과 밝다 못해 눈 부신 장난기는 주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늘 아이의 이런 성격은 남편이 본인을 닮았다고 말하면서, 본인도 아주 똑같았다고 말해왔다. 이것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게 말이다. 왜 남편의 유년시절을 우리 아이가 닮아서 내가 힘든가 생각했으니 말이다.


둘째 두 돌 생일에 엄마랑 친오빠가 왔다. 그리고 유년시절 얼마나 오빠가 까불거렸는지, 어떻게 유난이었는지 얘기를 했다. 늘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알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기 전까지만 유효했던 성격이라는 것을.


우리 오빠는 늘 어두웠다. 소심해 보였고 자신감 없어 보였다.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것처럼 의욕도 없었고 끝까지 해내는 것 없이 포기하는 게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환경이다.


오빠가 만약 할머니랑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그때 우리 가족이 할머니 없이 아빠, 엄마, 오빠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오빠는 어쩌면 누구보다 밝고 자신감 넘치는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늘 풀이 죽어 보였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나는 6살 차이 나는 동생이라 아직 모르는 게 많았고, 오빠보다는 사랑을 더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만약 오빠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오빠가 더 잘 되길 바라면서, 속으로 안타까움을 넘어서 한심한 마음이 올라오려고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을 했는지 말이다. 오빠니까 버텼을 수도 있다. 오빠라서 지금 이 정도로 잘 커준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올바르게 버텨낸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다. 감히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능력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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