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평범함의 정의는 어떤 기준이 될까?

변화하는 시대의 평범함,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

by 리하루

내가 아는 평범함이, 결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나에게 가장 평범함의 기준은 아이 둘이 있는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이었다. 물론 이때도 이 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개인의 사정과 각자의 환경은 다르기 때문에 평범함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요즘 내가 간과한 것은 바로 시대 흐름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어떤 게 평범한 삶인지, 무엇이 평범하다고 정의될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크게 의미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 내가 알던 평범함이 앞으로도 존재할까?


교육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대표적인 예로, 아이의 교육이 그렇다. 우리 때의 주입식 교육은 문제가 많다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다. 이 폐해를 이미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수의 교육은 주입식 교육과 선행 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누가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흔히 우리가 말하는 학군지에서는 아직도 옛것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7세 고시, 4세 고시라는 말을 직접 체감하면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왜 그러면 안 되는가 이 생각에 늘 방황한다.


5살인 아이가 6살 유치원 진학을 얘기할 때, 다들 "6살에도 일유(일반 유치원) 보내실 거예요? 영유(영어 유치원) 가세요?"가 기본 옵션인 시대.


남편도 늘 AI가 발달해서 영어 유치원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다가도, 어느 순간 "영어 유치원 나온 아이들은 확실히 다르다네."라고 말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도대체 뭐가 평범하고, 뭐가 비범한 것인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 매일이 혼란스럽게 느껴지고 있다.


AI를 따라갈 수 없는 시대.

chat GPT가 한창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퍼지기 시작했을 무렵, 둘째를 출산하기 위해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사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내가 AI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고, 역시나 나는 여전히 AI가 두렵다.


어느덧 chat GPT는 한물갔다는 소리가 들리고 제미나이나 다른 수많은 플랫폼이 이를 대체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나의 사진이 아닌 나의 모습을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 낼 수 있는 AI. 평범한 일상과 업무의 형태, 모든 방면에서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검색 도구가 되어가는 AI.


내가 생각해 왔던 네 명의 한 가족 구성원이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고 여행 다니는 모습이 더 이상 평범함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아이들이 AI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AI를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말하는 IT 개발자 남편. 그 이야기가 이제는 몸소 와닿으면서 나부터 AI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친구도, 가족도 딱히 필요 없이 AI 하나로 외롭지 않은 세상이 다가올 것 같아서, 오늘은 나의 가정과 평온함을 이야기하는 대신 내가 알던 평범함이 비범함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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