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태어난 환경, 내가 선택한 나의 길, 이 모든 것들은 다 감당할 수 있었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고, 자라는 환경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서 그냥 담담하게 원래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게 나에게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까지는 어쩔 수 없이 그냥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하면서 살았고, 불만이 있어도 없는 듯 딱히 티 내지 않고 그냥 잘 버텨왔다. 정말 그야말로 버텼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린다.
대학교에 진입한 뒤에는 꽤나 주도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도, 해외봉사도, 추후 진로도 모두 다 내가 결정할 수 있었고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지는 게 꽤나 기분이 좋았다.
누가 정해준 길이 아니고 내가 정한 길이기 때문에, 누굴 탓할 수도 없는 환경이 차라리 좋았다. 누굴 탓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오히려 매번 부정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했을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남편을 만나고, 누구보다 빨리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그리고, 원래도 배란 주기가 정확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임신에 대한 걱정은 늘 도사리고 있었다.
내가 슬슬 아이에 대한 생각과 걱정이 많아질 때쯤, 간혹 속도위반으로 임신을 해서 결혼하는 사례가 생기곤 했다. 남편은 웃으면서 친구를 놀려대기도 했지만, 나는 꽤나 비참했다.
나는 왜 모든 순간이 걱정과 굴곡일까 싶었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도 쉽게 되지 않는 게, 그게 나라서 싫었다.
난임 병원에서 과배란을 통한 자연임신 시도로 총 3번의 임신을 했다.
임신 8주 초기 유산, 화학적 유산, 그리고 자궁 외 임신까지. 임신을 여러 번 해봤지만 반복되는 유산에 시작부터 지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단단하게 버텨온 지난날 덕분에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나는 묵묵히 다음 임신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길어지는 임신 준비와 반복되는 임신과 유산에 인공수정도 시도해 보고 결국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두 번의 이식 끝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토록 바라던 첫 아이를 임신했다. 남편과 임신테스트기를 보며 이번엔 정말 잘 될 것 같다고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축하했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39주 6일, 설 연휴를 앞둔 시기라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아이를 유도분만으로 출산을 시도하기로 했다.
유도분만을 시도하는 도중 두 번이나 아이의 심장 박동이 절반 가량 떨어지는 위험한 순간이 왔고, 긴급으로 응급 제왕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아이는 태어난 그날 저녁, 엄마 아빠도 없이 홀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서 보름 이상 혼자 견뎌줘야 했다.
단순히 산소포화도가 좋지 않아서 2-3일 정도면 퇴원할 것이라고 했던 신생아 중환자실 행.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우리 아이가 잘못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회사로 그냥 다시 돌아가는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무모한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제대로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한 초보 엄마였기 때문에, 아이를 낳았다는 현실감도 없었고 모성애도 부족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보내고 이틀째 되는 날, 새벽 2시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저혈당이 있고, 폐출혈 진행 중이며, 폐동맥 고혈압이 의심됩니다. 패혈증이 올 수 있는 상황으로 오늘이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네..?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아기 괜찮은 거죠..?"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건 그냥 드라마에서나 들어본 말이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는 병원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에 아기 혼자 대학병원에 전원을 간 상태였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아기 면회도 되지 않아서, 전화로만 보고 받을 수 있는 이 상황에 오늘 밤이 고비라고 통보받았다.
'나에게는 그냥 아이를 낳고 키우는 행복조차 허락되지 않는구나.' 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는 금방 폐출혈이 잡히고 점차 건강을 회복하여 17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지만,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출산하고 내가 안아볼 수 있는 순간까지 너무 지옥 같은 순간이 많았다.
그리고 오늘, sns에서 내가 오랜 시간 지켜봐 온 백혈병의 아이가 결국 하늘나라로 소풍을 간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지옥은 사실 지옥 근처도 못 갈 정도의 꾀병이었음을 깨달았다.
나의 과거가, 그리고 현재가 얼마나 평범한지,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고 부끄러웠다.
정말이지 세상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엄마 아빠 곁에서만 잘 자라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