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1

신앙에 관하여 1

by 해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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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고마운 내 아버지

당신을 죽도록 이토록

증오한 덕에 난 아직

살아있고

증오는 나의 힘

배신하지 않을 나의 아군 나의 주인 나의 힘


증오는 나의 힘- 2004, 김윤아 2집 수록곡 가사 中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음률이 좋아도 가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듣지 않는다. 등하굣길, 등하원 길 혼자인 시간이 길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음악을 많이 들었다.

CDP, mp3플레이어 등은 같은 노래를 마르고 닳도록 듣게 했다. 다양한 노래를 듣기보다 마음에 드는 곡 몇 개를 골라 꾸준히 들었다.


김윤아의 작품세계를 나는 좋아한다. 그림 같기도 하고, 환상 같고 소설 같은 음악들.

나는 '증오는 나의 힘'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를 생물학적 아버지와 신 두 가지로 생각했다. 어느 것으로 생각해도 나를 자극하고 사색하게 하는 해석이었다.

노래에서와 같이 처절한 적은 몇 번 없었지만 증오는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고 여긴다. 사랑하고 기대했기에 증오는 커진다.


오늘 나는 아버지로 표현되는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정신 차려보니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를 기다리며 주일학교 수업을 들었고 할머니와 기도를 했으며 할머니 손을 잡고 매주 성당에 갔다.


할머니는 독실한 신자셨다. 성당에 가지 않는 날에도 집에서 매일미사 책을 보며 홀로 미사를 드렸고, 매일 아침 6시 전에 일어나 촛불을 켜고 6시 기도를 드리셨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기도하는 할머니의 등을 보고 나지막한 기도소리를 듣고 어른거리는 촛불을 보고 다시 잠들곤 했다. 정오, 저녁 6시 할머니는 하루 세 번 기도를 하셨다.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이 돌아오시지 않은 시간, 저녁에 심심할 때면 티브이를 보기도 했지만 할머니와 묵주기도를 하기도 했다.

나는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달달 외운 적이 없다. 발음이 헷갈리는 몇 부분을 조금 신경 써서 봤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당연한 듯 천주교신자의 생활을 했다.


반항기랄까 첫 냉담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며 조금 소홀하긴 했지만 내 종교를 미워하거나 안 다닐 생각은 안 했다. 근데 할머니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보내드리고서, 장례식에서 반나절을 울며 보내다 나의 건강을 걱정한 어른들에 의해 집으로 보내지면서 나는 신을 원망했다. 우리 할머니한테 그럴 수는 없었다. 당신께 어떻게 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일본어를 할 줄 아신다. 듣기로는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나이를 속여 급하게 결혼했다 하셨다. 그 시절에도 할머니는 할머니의 아버지께 두들겨 맞으며 성당에 갔다고 했다. 아빠가 군대에 있을 때 암 선고를 받으셨지만 그것도 신앙으로 이겨냈다 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그만하시고 싶었던 걸까.

담석인 줄 알고 한 입원은 길어졌고, 수술하려고 개복했다 손도 못 대고 다시 닫았다고 했다. 나는 매일 병원으로 하교했다. 퇴근하는 아빠와 함께 집으로 갔다. 그때는 매일 놀지도 못하고 병원에 가는 게 싫었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할머니와 있었던 게 다행이다 싶다. 죄송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할 세도 없이 가버리셔서 어린 마음에 서글펐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자꾸 눈물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돌아가실 때였나 싶다. 시어머니에 손주까지, 그 북적이던 집에서 남편도 떠나보내고 홀로 2년여를 보내셨으니까.


결론은 그 이후 신을 멀리했다. 내게 신을 알게 해 준 사람이 떠나가고, 그 마지막이 이해되지 않아서. 나는 어디에서도 신을 찾을 수 없었고, 나는 성당에 가지 않았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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