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2

신앙에 관하여 2

by 해넘이

이어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입학해 친해진 한 친구는 내게 신선한 자극이었다.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그 친구는 ‘모두의 믿음은 그에게 옳지. 모든 신은 믿음으로서 다 존재한다.’라는 너무 개방적인 내 신학적 논리에 강하게 반발하긴 했으나 자신의 신앙을 올곧게 지켜가는 친구였다.

그 예민하고 공부하느라 바쁜 고3 시기에도 석식 전 성경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적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같은 교회 친구들과 그것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


나는 절대적인 믿음 앞에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부러웠다.

나 역시 절대자 앞에 거짓일 수 없으며, 그의 뜻이 옳음에 티끌의 의심도 없이, 삶에 불안 없이 헤쳐가고 싶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신앙’이 갖고 싶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내 삶은 별다를 바 없이 흘러갔지만 난 그 물음을 계속 품고 있었다.



세 번째 만남은 대학교 2학년 나의 룸에이트였다.

우리 학교 가대연(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회장이었던 그녀에게 나는 나의 종교를 숨겼다.

냉담이긴 하나 나는 내 세례명을 버리거나 천주교 교적을 포기한 적은 없다(여기서 나의 모순을 알 수 있다). 그저 성당에 가지 않고 기도하지 않을 뿐.

새 학년에 시작되어 짐을 풀던 날, 기숙사 책상에 자리 잡는 십자가와 성모상을 보고 긴장했으나 다행히 내게 종교가 뭐냐 묻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캠퍼스(캠퍼스라 하기 민망한 곳이나 캠퍼스는 캠퍼스니까) 여기저기 차려진 동아리 홍보 부스들 중 한 곳에 멈춰 섰다. 밥을 먹으러 기숙사 식당에 가던 중이었는데 원흉(?)은 동기였다.

동기는 세례를 받고 싶다며 교리를 들어야 한다고 카대연 가입서에 서명했다. 나는 이번에도 인사만 하고 조용히 있었다. 근데 동기들로 인해 나 역시 천주교임이 밝혀졌고, 룸메이트는 왜 말을 안 했냐며 어서 가입하라고 했다.

나는 그런 부드럽고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에게 약하다. 그 순수하고 선한 눈빛은 거절이 어렵다. 나는 미사도 못 나가고 활동 못한다고 극구 사양했고, 이름만 올려놔도 되니 일단 가입하라고 했다(그게 될리가). 나는 카대연 소속이 되었다.

익숙해서일까, 편안하고 꿍꿍이 없는 선한 이들이기 때문일까. 신부님과 수녀님은 나를 순한 양으로 만든다. 나는 개강미사부터 중요한 카대연 행사에는 매번 자리했다. 동기가 같은 동아리이고, 룸메가 그 동아리 회장인데 기숙사에 사는 나는 내 알리바이를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청년성서모임 모집”

모태신앙의 약점이랄까 첫 영성체 받을 때 외에 기도를 달달 외워본 적이 없고, 주일학교에 놀러 다녔지 배운 걸 기억 못 하는 나는 교리를 모른다. 성서를 제대로 읽거나 그 뜻을 배워본 적이 없다.

혼자 읽어보려 시도했으나, 소설도, 시도 아닌 그 글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전 세계 1위 베스트셀러라는데, 온갖 소설, 영화, 드라마에 인용되는데 나만 까막눈인 게 싫었다. 알고 싶었다. 교내에서 일주일에 1-2시간만 내면 되는 일이라 참여했다.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고, 그 덕에 학교생활도 풍요로워졌다. 성서모임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모임이 모두 끝나고 3박 4일의 연수에 같이 가는 친구도 없이 홀로 참여했다. 뻘쭘하고 외롭고 쑥쑥했으나 연수 들으러 왔지 놀러 왔나, 정신승리로 버텼다. 그리고 연수는 훌륭했다.


연수 마지막날, 나는 그렇게 찾던 신앙을 찾았다! 신의 응답을 들었다. 신은 계속 내 곁에 있었다.

'너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에 '여기 있습니다. 대체 어디 계십니까?'라고 하자 '여기 있다.'라고 대답하셨다.


이게 자세하게 설명하긴 좀 쑥스럽고, 우선 오해를 풀자면 신이 진짜 내 옆에 짠! 나타나고 뭐가 눈에 보이고, 사람 목소리처럼 들리고 그런 건 아니다. 이건 어떤 일상적이지 않은 놀라운 경험, 느낌, 깨달음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신은 신부님을 통해 대답했고, 나는 그걸 깨닫는 순간 엉엉 울었다. 신앙을 찾아 헤매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왜 이제야 나타났냐는 투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원망했던 것들과 곁에 있음에도 몰랐던 시간에 대한 미안함이기도 했다.


그 후로 성당에도 나가고, 성령 세미나도 듣고, 견진성사도 보고, 성서모임도 더 했다.

멀쩡히 잘 나가던 공무원 그만두고 사업할 때, '탈출기' 공부는 매번 어떤 성공학 서적보다 큰 깨달음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여전히 주변에 많은 신자들이 있어(할머니께서 뿌린 씨앗은 우리 친인척들에게 여전히 이어지는 신앙생활로 결실을 맺었다.) 부르면 가끔 가지만 미사엔 거의 안 간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기도를 하며, 성당을 지날 땐 인사를 한다.

나는 여전히 신앙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의 주된 기도는 "당신의 어린 양,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주소서. 당신 앞에 부끄럽지 않게 해 주소서. 당신이 바라신 사랑과 평화가 이 땅에 오도록, 그 나라에 함께할 만한 사람 되도록 해주소서." 같은 것들이다.

내가 부러워했던, 한 톨의 의심도 없이, 절대적으로 옳은 자 앞에 당당한 나의 모습을 그리며 그를 믿고 가는 삶이다.


윤동주 시인도 그런 맘이 아니었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나의 모든 것을 나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기 위해, 매 순간을 돌아본다.

그렇게 내 삶에 진심이기에 나의 지금은 여전히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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