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변치 않는 의미를 보았다.
오늘부터 함께 일할 진 대리야.
서로 인사하라고.
신제현 부장이 나를 팀원들에게 소개했다. 낯선 사람들과의 첫 만남은 언제나 어색했다. 게다가 나는 전혀 다른 문명권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진연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반갑습니다. 잘해 봅시다….”
함께 일할 팀원들 그리고 옆 팀 사람들과 악수하며 간단히 통성명했다.
신 부장 자리는 뒤가 통유리로 마포대교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 바로 옆 기둥에 여성 상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형 액자가 걸려 있다. 슬며시 액자로 눈길이 갔다. 속내가 드러날까 민망했다.
‘여기가 회사 맞나?’
복장도 제각각. 찢어진 청바지, 반팔 티셔츠, 뭔가 잔뜩 쌓아놓은 정리되지 않은 책상, 낮술까지…
흰색 와이셔츠만 익숙했던 내게, 이것은 아노미였다. 전 직장에선 공공연히 장발 단속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남자가 머리를 묶고 다닌다.
서울 한 복판에, 전혀 다른 두 문명이 같은 시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일을 마친 뒤 술자리로 이어지는 것은 어디나 비슷했다. 전 직장에선 주로 또래끼리 뭉쳤다면 여기는 같은 부서끼리 몰려다녔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살아남는 방법도 그때그때 달라졌다.
사자의 가장 위협적인 적이 다른 수컷 사자이듯, 가까이 있는 타 부서 직원이 가장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누구든 무리를 벗어나면 적으로 취급됐다.
아주 떠나면 친구로 남았다.
어디나 그렇지만 특히 광고대행사는 승자 독식의 극한 경쟁의 세계다. 매 순간 경쟁이고 승부였다. 여기는 오직 한 곳의 ‘승자(勝者)’ - 이것만 가치 있다. 2등부터는 똑같이 아무 의미 없는 패자에 불과했다.
그 무렵, 한 무리의 강력한 집단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확, 내렸습니다!”
여자 다리가 매혹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지면을 채웠다. 그 아래 아무렇게나 툭 내려간 구겨진 바지.
상상을 자극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발적인 헤드라인은 순식간에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첫 번째 데뷔 광고를 시작으로 몽골 기마군단처럼 거침없이 업계를 평정했다. 그들과 경쟁한 팀은 여지없이, 패배한 사자 무리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이 만든 광고는 소비자에겐 트렌드가 됐고, 업계에선 따라야 할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점점 그들은 질투의 대상을 넘어,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우상이 되어 갔다. 잠깐이라도 그 회사를 거쳤다는 이력은 어디나 갈 수 있는 마패였다.
어느 순간, 처음의 그 치열함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미세한 변화였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기발한 아이디어란 언젠가 바닥이 드러난다. 다음에는 마약처럼 더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맨다.
광고는 실적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이것이 본질인데,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하다 보니 차츰 본질에서 벗어났다. 그들의 존재감은 어느새 희미해졌고, 우르르 몰려갔던 광고주는 연어가 회귀하듯 다시 떠났다. 광고주 O사도 2년 만에 제 발로 우리 회사로 다시 왔다. 뿔뿔이 흩어졌던 직원들도 돌아왔고, 신 부장도 국장 직함으로 뉴질랜드에서 왔다.
떠남, 다른 편에선 돌아옴이었다.
그의 가족들 – 아내와 두 자녀 – 은 5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 큰 딸에게 백혈병이 발병했는데, 학교에 들어가니 병세가 심해졌다. 기러기 가족으로 있던 그는, 2년 전 담당 광고주가 떠나자 미련 없이 떠났다. 광고주가 다시 오자 그도 돌아왔다. 회사에서 삼고초려도 했지만, 물고기가 다시 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자기 자리로 떠날 것이다.
그의 숙소는 회사에서 마련해 준 오피스텔이었다. 길만 건너면 바로 갈 수 있어 현재로선 최선이었지만, 임시 거처일 뿐이었다. 혼자인데도, 그는 함께 저녁 먹자는 소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그와 단 둘이 거나하게 취했다. 1차, 2차로 이어지며, 맥주 몇 병과 안주 거리를 사들고 그의 오피스텔로 갔다.
“큰 애는 잘 지내지요?” 2년 전 그가 떠나기 앞서, 완치됐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별 부담 없이 물었다. 그는 나를 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툭 던지듯 말했다.
“가슴에 묻고 왔어”
술이 확 깼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이런 거구나’ 아무 말없이 몇 잔 더 돌아갔다. 취기가 많이 올라왔다.
그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딸이 보고 있는 것 같아. 딴짓 못하겠어. 이젠 사람들한테 독하게도 못하겠고. 내가 욕을 많이 먹었잖아…”
왠지 많이 변했다 싶었는데, 이거였구나…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 누구에겐 부담과 억압이지만, 어떤 이에겐 안도감을 준다. 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그에겐 절망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버팀목이 됐다.
역설이었다.
그는 가족을 위해 독하게 일했다. 그의 최선이 딸의 죽음조차 담담히 마주할 수 있게 한 것일까?
그는 1년 뒤, 뉴질랜드 가족에게 돌아갔다. 그가 떠남으로 인원이 새롭게 배치됐다. 나는 얼떨결에 회사에서 제일 큰 광고주의 팀장이 됐다.
며칠 전, 카톡 알림판에 그가 생일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무심코 눌러보니 프로필 첫 화면에 딸의 사진이 있었다. 내가 봤던, 초등학교 1학년 때 그 모습이었다.
다음 장에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백인 노인과 함께, 낚시로 잡은 큰 물고기를 손에 들고 웃고 있었다. 그다음에는 아내와 아들, 세 식구가 함께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많이 말라 있었고, 아들은 아빠보다 훌쩍 더 커져 있었다.
“딸이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는 가슴에 품은 딸에게 더 가까이 갔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승(勝)을 향한 염원은
딸과의 추억을 붙잡는 것으로 바뀌었다.
떠남으로 그는 비로소 자기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발견했다.
지금, 그 의미 안에서 좋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