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니까 기대할 수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만들어 오세요.
팀장으로 내가 맡은 광고주는 30 여 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이었다. 광고비도 회사 규모에 걸맞게 엄청나 국내 탑 10 안에 들었다. 주위에선 영전이라고 했지만 그만큼 고달팠다. 돈을 많이 쓰면, 폭력은 심해진다. 우리는 그들이 흔드는 줄에 매달린 인형이었다.
광고주에 대한 어떤 거역이나 불손한 행동도 용납되지 않았다. 행여 그런 일이 생기면, 소문은 하루 이틀 안에 파다하게 퍼진다. 곧바로 여기저기서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든다. 모두 굶주린 포식자들이다.
‘광고주가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했대’
‘누군지 이젠 끝났네’
그것은 평생 붙어 다니는 주홍글씨이며, 곧바로 전과자로 낙인찍혔다.
예산은 프로젝트별로 경쟁하여, 이긴 회사가 모두 차지하는 완전한 승자독식이었다. 극심한 경쟁과 압박, 이기면 당연하고, 연거푸 세 번 지면 바로 아웃되는 무덤에 다름없었다. 프로젝트 기간 중에는 집에 못 가는 날이 허다했다. 나는 전쟁터 최전선에 배치된 총알받이 소대장이었다.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딸을 보고 있었다. 아내는 당직 근무로 저녁에 온다. 어머니는 손녀를 보러 일요일 저녁, 인천 우리 집에 오셔서 토요일 오후에 광명 집으로 가신다. 첫 손주가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된 일상이다.
이제 두 돌이 지난 딸은 아직도 나를 어색해한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돼서 있는 힘껏 발버둥 친다. 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회사가 훨씬 편했다.
불편함을 참지 못해 떠나는 것일까? 편안함을 기대하며 떠나는 것일까?
딸을 데리고 은행에 갔다. 밖에 나가니 그나마 덜 보챈다.
‘휴, 잘 나왔다. 이젠 좀 잠잠하려나’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하는데 화면에서 토끼가 나와 안내를 한다. 딸아이가 신기한지 깔깔 거리며 손으로 가리키며 웃는다.
안도감.
나도 덩달아 웃었다.
이제, 어린 딸이 안도하게 됐다는 안도감이었다.
기계에서 돈을 꺼내니, 화면의 토끼가 사라졌다. 갑자기 아이가 손가락으로 기계를 가리키며 대성통곡한다.
“토끼 어딨어? 토끼가 없어졌어”
아이 울음소리에, 은행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나를 향한다.
‘저 사람 유괴범 아니야! 아니면 아동 학대?’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는 눈초리에 의심이 가득하다.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는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줘야겠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모면해야 했다.
빨리 들어오쇼. 싫으면 관두고
광고주가 퉁명스럽게 전화하고 바로 끊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내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
‘어쩐다… 지금부턴 일분일초가 급하다.
토요일 오후, 겨우 두 돌 된 딸과 나만 있다.
아이는 계속 울며 보챈다. 마음은 급한데…
어머니밖에 없다. 어쩔 수 없다.
품에 안은 딸이 안쓰러워 다시 봤다. 지쳤는지 좀 조용하다.
나중에 아빠를 이해하겠지.
“어머니, 저 지금 급히 회사 가야 해요.”
“뭐, 애는?”
시끄런 전철 소리를 뚫는 어머니 외침.
관심은 오로지 내 손녀딸.
사람들 시선은 아랑곳 않는다.
좀 전 은행에서 내 모습과 사뭇 다르다.
왜지?
이제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올라,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신다.
이 아이는 하늘이 준 선물
50대 초, 남편 떠나보내고,
아들도 떠난 빈 공간,
어느 날 콩알만 한 녀석이 품에 안겼다.
처음엔 보자기에 꽁꽁 쌓여
종일 잠만 자다,
가끔 쳐다보는 눈빛 -
내 맘을 온통 흔들어 다 내보내고,
대신 꽉 채웠다.
이 아이 덕에 온기가 가득했다.
나는 설명도 제대로 않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이를 안고 곧바로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어쩌다 눈인사만 나눈 옆집 엄마에게 아이를 맡겼다.
“정말 죄송해요. 앞집인데요. 급히 회사에 가야 해서요. 이 아이 좀 부탁해도 될까요? 저희 어머니가 15분 정도면 오실 거예요. 지금 부평역을 지났어요.”
다행히 앞집 아이와 우리 딸이 친구라, 그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이제 친구와 함께 있으니 안 울 거야’ 이렇게 위안을 삼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도 않고 뛰어 내려가 그대로 악세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운전하는 내내 ‘저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이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다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몇 분 안 돼서
“나 도착했다. 애는 잘 놀고 있더라. 아무 염려 말고 일 잘 봐. 차 조심하고”.
‘뛰어 오셨겠지. 역시 친구가 아빠보다 좋은가 보다.’
‘어머니 연세에, 혼자 아이를 돌본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별로 힘들어하지 않으신다. 어머니 성격에 부러 내색 않으시는 건, 아닐 텐데… 그럼 뭘까?’
존재 자체가 기쁨,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
나는 내 일이 좋았다. 그래서 힘들어도 참고 견뎠다. 어머니는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결은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종이구나!
평소엔 별 존재감 없어 보이는 이런 것들이 모여 세상이 유지되는 것인가?
공기나 햇빛처럼…
꽤 큰 프로젝트 같은데…
토요일 늦은 오후인데 여러 사람이 나와 있었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무슨 일이지? 엄청 쓰겠는데…’
몇 분 뒤, 경쟁사 류 차장과 김 대리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내가 먼저 뭐라도 들은 정보가 있는지 경계하는 눈치다. ‘언제 왔어요?’ 광고주한테는 건성으로 인사하며, 내게 묻는다.
‘방금 전에요. 아직 시작하지 않았어요.’ 무심하게 대답한 뒤, 다시 이 부장을 바라봤다.
미팅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화 내용을 하나하나 재생하며, 그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행간의 의미들을 찾으려 애썼다. 승부에서는 현장에서의 ‘직관’이 중요했다. 이 느낌을 붙잡아 최대한 선명하게 그리고 단순 명료하게 그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마다 자기 생각대로 해석한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난데. 지금 미팅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야. 내일 10시까지 모두 나오라고 해.” 이 상무에게는 직접 전화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내 전화는 꼭 받는다. 불가피하게 받지 못하면 나중에 반드시 전화했다. 직원들에게 따로 양해를 구할 필요도 없었다. 일요일이지만 당연한 줄 안다.
다음날, 아침 8시에 회사에 도착했다. 일요일 이 시간엔 집에서 회사까지 30분이면 도착한다.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일요일 이른 아침,
사무실, 나만의 공간 -
눈을 감고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직관과 만난다.
‘누가 결정권자일까? 최근 오너 딸이 합류했다던데. 칠십이 넘은 창업주 회장과 이제 막 합류한 이십 대 미국 유학파 손녀 정 과장. 그녀는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누굴 선택해야 하나?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 문득 어제 있었던 어머니와 딸 생각이 났다. ‘손녀를 극진히 생각하는 할머니! 혹시 이게 하늘의 뜻인가?’ 갑자기 퍼뜩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그 양반한테는 자식보다 회사가 먼저일 거야.’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브리프를 작성하고 출력해서 자리에 앉으니, 직원들이 하나 둘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 상무도 참석했다.
모두 열 명이 넘는 인원이 회의실에 모였다. 이제부터 우리는 전적으로 여기에 매달려야 한다. 좁은 회의실에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눈치가 보여 기침 소리도 제대로 못 낸다.
브리핑이 끝나자 중압감으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책임지는 사람 의견대로 간다. 확신이 있어서 내린 선택은 아니다. 데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마음이 그쪽으로 끌렸다. 경쟁사도, 광고주도 이런 식으로 결정할 것이다.
‘이 길이 맞나?’
갈 길이 정해져도 의심은 계속된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깊이 생각하고 고민할 때, 어느 순간 ‘이거야!’하는 확신이 들어올 때가 있다. 이게 있어야 나를 설득할 수 있다. 내가 설득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2주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틈틈이 회의를 주관하고, 제작물을 꼼꼼히 점검했다. 프레젠테이션 자리는 첫인상이 중요하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글자 하나하나, 글씨체, 배경색 등등 신경 쓸게 끝도 없다. 오타라도 발견되면,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성의 없이 건성으로 들고 왔다고 여겨진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지고 만다.
어떤 사람은 꼬투리만 잡는다. 마치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대단한 잘못을 발견한 것처럼 소리 높인다. 그들은 자기의 존재 의미를 이렇게 확인하려 든다. 목소리 큰 사람이 승부의 변수가 되기도 한다. 대개 부정적인 의견은 긍정적인 의견을 이긴다. 그래서 중요한 자리에선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트집 잡힐 일이 없어야 한다.
D데이 3일 전부터는 광고 기획서를 외우기 시작한다. 내 취향에 맞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아나운서를 연상하며, 손짓 하나, 표정, 억양에 신경 쓰며 연기 연습을 한다.
‘혼을 담아야 전달이 된다. 나는 연극 무대의 연기자다.’
오전 5시,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바로 욕실로 가서 세수하고, 면도를 한다. 전기면도기는 쓰지 않는다. 손으로 직접 밀어야 샅샅이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여 깎이지 않은 수염 한 두 개라도 다른 사람 눈에 띄는 것이 싫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볼 때, 먼저 ‘이 사람 얼굴에 수염이 남아있나’ 확인한다. 일종의 트집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단점을 먼저 찾는다. 그리고 사소한 것에서 선입견을 갖고 전체를 판단한다.
우리가 먼저 발표한다. 장비는 가져오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만, 새 컴퓨터를 챙겼다. 준비가 덜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가 터졌다. 이것은 내게 트라우마였다.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될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광고주가 우르르 들어온다. 우리 회사 사장도 참석했다. 좌석엔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회의실을 쭉 둘러보며 이름표를 확인했는데,
‘아, 회장 이름표가 없다…’
눈을 돌려 옆 자리를 봤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손녀, 정 과장 이름표가 앞자리에 있다!’ 순간 침이 꿀꺽 넘어갔다. 마음에 미세한 진동이 일어나 서늘했다. 그녀는 사장 옆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외웠던 원고가 가물가물해졌다.
15분 정도 지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정적을 깼다. 정 과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영어로 전화를 받았다. “Hello, This is she”
모든 게 일시에 중단됐다. 그녀는 잠시 양해를 구하며 “저 없어도 되지요? 계속하세요” 휙 나가 버린다. 순간 내 시선은 우리 사장과 곁에 앉은 이 상무에게 옮겨갔다. 두 사람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계속하세요” 광고주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신 퍼뜩 들었다.
겨우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나와 1층 회사 로비에 모였다. 모두 아무 말 않고 시선을 피한다. 평소 같으면 덕담도 나누며, 회사로 돌아가 대낮부터 술판이 벌어질 테지만, “수고하셨습니다.” 말하며 슬그머니 한두 명씩 사라졌다.
이 시간에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집에 가면 이것저것 물어볼 게 뻔한데, 지금은 모든 상황에서 떠나고 싫었다. 그러나 집 가까이 있고 싶었다.
‘인천에서 아는 곳이라곤 애 데리고 몇 번 갔던 수봉공원 밖에 없는데…’
얕은 언덕 위에 있는 작은 공원으로, 그곳에 바이킹이 있었다.
‘거기서 바이킹이나 타자.’
평일 낮 시간 수봉공원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표를 사서 일하는 사람에게 제출했다. 그가 힐끔 쳐다보더니,
‘젊은 사람이 넥타이매고, 이 시간에 여기 왜 왔나?’ 하는 눈치다.
바이킹 맨 끝 자리에 앉아. 다섯 번을 연달아 탔다.
하늘 끝까지 올라 뚝 떨어진다.
마음속 상념들도
모두 떨어져 버려라 -
이렇게 육체를 학대라면,
죄책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을까…
패배보다 훨씬 힘든 것은
나를 부정하는 거였다.
혼자 계속 타고 있으니 눈치가 뵈고 미안했다. 그렇다고 연인들끼리 한껏 웃으며, 서로 손 내밀며 타는 회전목마를 타기엔 너무 민망했다. 이리저리 헤매다 저녁 시간이 지나 집에 왔다.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낯선 사람을 만난 것처럼 놀라며 묻는다.
“아니, 이 시간에 웬일이야?”
“직원들하고 같이 안 있었어요? 와서 식사하세요”
다행히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묻지 않는다. 별 관심이 없나 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일에 별 관심이 없다. 대부분 자기 생각 속에 갇혀, 죽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쪽이 됐으니까. 바로 준비하세요.
이번에도 회장이 고집을 피우셨다. 결과에 따라 고집이 아집이 되기도 하고, 신념이 되기도 한다. 경쟁사에선 회장이 똥고집을 부려 말도 안 되게 졌다며 둘러댈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기업가 정신의 표상으로 미화했다. 한쪽에선 고집불통 노인네, 우리에겐 불굴의 기업인이었다. 상대적이다.
맥이 풀려 저녁 회식을 마다하고 일찍 집에 왔다. 아내가 애를 둘러업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묻는다.
“우리가 됐어” 짧게 대답했다.
“와, 참 잘 됐네. 축하해요. 그동안 수고 많았는데…” 아내의 관심은 다른데 있다. 더 묻지 않고, 집 안 여기저기 다니며 분주하다.
잠시 후, “밥 먹었어요?”
왠지 다르게 들렸다.
아내의 관심은 내 일이 아니라, 나한테 있었다. 아내가 아무 말하지 않는 것은 무관심이 아닌 신뢰였다. 이렇게 신뢰는 말없이 지켜본다.
지금, 직원들은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을 것이다. 저마다 한 마디씩 하겠지만, 실력은 거기서 거기고, 결정적인 변수도 아니다.
삶에도 수많은 변수들이 있다. 누구도 정확히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며칠 뒤면 감격도 아픔도 사라지고 다시 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아내는 아이를 둘러업고, 여전히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한다.
오늘은 여기가 더 따뜻하다. 그냥 여기 있고 싶다.
이겼기 때문일까? 만일, 졌으면 어땠을까? 잘 모르겠다.
모르기 때문에 소망이 있다. 역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