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지난 뒤, 비로소 시작된 고요한 관찰기
예, 드디어 취업을 했습니다. '백설공주와 일곱 인간쓰레기'라는 처절한 잔혹 연대기를 써 내려오던 제가 드디어 새로운 숲에 발을 들였습니다. 연차도 찰 만큼 찼고 이직도 여러 번이지만, 첫 출근 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의 그 미묘한 공기는 늘 적응되지 않습니다. 낯선 책상의 서늘한 촉감, 아직 내 직급이 입에 붙지 않은 사람들의 생경한 목소리, 그리고 김 차장으로 들어온 나를 향한 은근한 탐색전까지. 하지만 이번 숲은 그동안 제가 거쳐온 험난한 정글과는 습도부터가 사뭇 달랐습니다.
가장 먼저 저를 맞이한 건, 뜻밖에도 그리운 번잡함이었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특유의 종이 냄새와 쉴 새 없이 웅웅거리는 컴퓨터 팬 소리, 그리고 책상마다 제멋대로 산처럼 쌓여있는 서류 더미들.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한 스트레스의 상징이겠지만, 긴 공백기를 거쳐온 저에게는 그 풍경이 눈물이 핑 돌 만큼 반가운 환대였습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보냈던 지난 몇 달은 사실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내 직업 경력이 맥없이 마침표를 찍는 걸까?', '김 차장 소리 들으며 일하던 나도 이제는 무얼 해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들이 밤마다 천장을 가득 메웠죠. 낮 시간에 도피하듯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려 봐도, 그것이 결코 생산적인 일상이 아니라는 서늘한 자각이 수시로 저를 갉아먹곤 했습니다. 그랬기에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소란스러운 움직임들은, 제가 다시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단단히 맞물렸다는 가장 눈물겨운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이 숲, 구성원이 조금 묘합니다.
제 밑으로 차장 한 명과 대리 한 명을 제외하면, 사무실의 밀도를 지배하는 건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들입니다. 말이 좋아 할아버지지, 전직 이사, 전무, 부사장, 심지어 대표까지 지냈던 거물급 시니어들이 즐비합니다. 처음엔 본능적으로 긴장했습니다. '인간쓰레기'라는 키워드에 절여진 제 방어기제는, 나이와 경력이 쟁쟁한 이분들이 가득한 이곳이 혹시 더 견고하고 폐쇄적인 꼰대들의 요새는 아닐까 끊임없이 경고 신호를 보냈거든요. 하지만 며칠 겪어본 이 숲의 주인들은 제가 수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쌓아온 어른에 대한 정의를 단숨에 전복시켰습니다.
이분들의 특징은 화를 내는 대신 지독할 정도로 젠틀하다는 점,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유난히 민감하다는 점입니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된 날, 하필 장염에 걸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점심은 도저히 못 먹겠다고 겨우 입을 떼니, 전직 임원 출신 팀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제 자리로 모여드셨습니다. 그러고는 근처에서 가장 용하다는 병원 목록을 줄줄 읊기 시작하셨죠.
귀찮기도 하고 괜히 유난 떠는 것 같아 "정말 괜찮습니다, 약 먹고 좀 쉴게요"라며 버텼지만, 그들은 단호했습니다. 결국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제 팔을 이끌고 기어이 병원까지 동행하셨습니다. 링거를 맞고 나오는 길에 들은 "김 차장, 아프면 일 못 해. 우리끼리 다녀올 테니까 병원부터 갔다 와요"라는 무심한 걱정은, 독사과만 골라 던지던 이전 직장의 빌런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생소한 온기였습니다. 나라는 부속품이 고장 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픈 것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 그 당연한 상식이 이곳에선 흐르고 있었습니다.
업무적인 충돌이 생길 때도 이 숲의 매너는 빛을 발합니다. 수십 년 경력의 어르신들이 내놓은 완고한 제안에 제가 실무 차장으로서 "이건 지금 시스템상 안 되는 겁니다"라고 강력하게 제 생각을 어필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내가 부사장 때 말이야"라는 식의 반발이 날아왔겠지만, 이곳은 다릅니다. 그들은 본인들의 논리를 차분히 설명하면서도, 대화의 끝에 꼭 이런 문장을 덧붙입니다.
"그렇다고 김 차장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우리 같이 제일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지."
이 한마디가 저를 얼마나 무참히 무장해제 시키는지 모릅니다. 내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사고방식이 젊다는 건 단순히 최신 트렌드를 아는 게 아니라, 타인의 의견을 온전하게 존중할 줄 아는 여유에서 나온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이분들은 놀라울 정도로 호기심이 많습니다. 보통의 직장인들이 적당히 일 처리하고 제때 돈 받으면 끝이라는 메마른 태도로 무장하고 있을 때, 이 할아버지들은 마치 처음 일을 배우는 학생처럼 질문을 던집니다. "이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가요? 김 차장, 우리 이거 확실하게 알아보고 연구해보는 시간도 좀 갖죠."
실제로 사무실에서는 꽤 많은 시간을 연구와 토론에 할애합니다. 효율과 속도라는 잣대로 보면 조금 느리고 답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과물만 쫓으며 서로를 갉아먹기보다, 그 과정 자체를 학구적으로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는 잊고 있었던 업무에 대한 순수한 지적 열망을 발견하곤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노동이 아니라, 무언가를 알아가는 즐거움으로서의 노동. 그 본질적인 가치를 저는 일흔이 다 된 선배들의 눈빛에서 배웁니다.
퇴근길,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진 노란 거리를 걷습니다. 예전에는 이 길 위에서 늘 아, 정말 지긋지긋하다라는 말을 껌처럼 씹으며 분노를 삭였습니다. 성취감보다는 소모품이 되어버린 허무함이 더 컸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발바닥에 닿는 보도블록의 감촉이 새삼스럽고 따뜻합니다.
오늘도 보람차게 일할 수 있어서, 다시 돌아갈 곳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건 비굴한 타협이 아니라, 제 삶을 되찾은 자의 진심 어린 안도입니다. 전쟁터 같던 일곱 빌런의 숲을 빠져나와, 조금은 느리고 질문이 많지만 사람의 아픔을 먼저 살피는 할아버지들의 숲에 도착해서야 저는 비로소 깊은 숨을 내뱉습니다.
이번 숲의 탐사는 꽤나 긴 여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저 또한 누군가에게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저 할아버지들처럼 젠틀하고 여유로운 진짜 어른으로 성장해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뿌리 깊은 고목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숲
거기엔 서두르라 재촉하는 바람 대신
천천히 들여다보라 이르는 잎새가 있다
수만 권의 서류 더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그들은 마른 손을 내밀며 말한다
틀린 길은 없다고
다만 우리가 아직 가보지 않은
또 다른 길이 있을 뿐이라고
아픈 이의 그림자를 먼저 밟지 않는
그 노련한 다정함 앞에
겨우내 얼어붙었던 날 선 방어기제는
봄눈처럼 속절없이 녹아내리고
이제야 나는
지긋지긋한 전쟁터가 아닌
함께 연구하고 탐색하는
나의 진짜 숲을 만났다
오래된 나무들이 내어준 그늘 아래서
비로소 나는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