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방치된 프로젝트, "진작에 하시든가요"라고 들이받은 날
경력직 차장으로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던 첫 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쌓아온 '짬바'가 있으니, 이쯤 되면 새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사람들의 업무 스타일은 어떤지 대략적인 견적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가 며칠 만에 내린 결론은 참담했다. 이 회사는 거대한 '무임승차'의 현장이자, 입으로만 일하는 자들의 완벽한 유토피아였다.
입사하자마자 내게는 무려 '3개월 전부터 전사적으로 진행 중이던' 메인 프로젝트가 주어졌다. 차장 직급으로 합류했으니 회사의 굵직한 코어 업무를 맡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 여겼다. 나름대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인수인계를 위해 프로젝트 공용 폴더를 열고 실무 파악에 들어간 첫날, 나는 내 마우스 휠이 고장 난 줄 알았다. 내릴 게 없었다. 3개월간 진행했다던 프로젝트의 실체는 갓 태어난 신생아의 뇌처럼 완벽한 순백의 상태였다. 기초 보고서, 뼈대가 되는 도면, 기초 계산식, 유관 부서와의 협의 내역? 단 1밀리미터도 전진한 흔적이 없었다. 폴더 안에는 영혼 없는 빈 껍데기 파일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더 경악스러운 사실은, 3개월 동안 이 거대한 폭탄을 폭탄 돌리기 하듯 쥐고 있던 기존 직원들 중 이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2시간, 입으로만 짓는 사상누각"
가장 환장할 노릇은 이 무능한 자들이 매일같이 보여주는 기괴한 '업무 퍼포먼스'였다. 본인들도 프로젝트가 굴러가야 한다는 위기감은 있었는지, 아니면 월급루팡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든 티 내고 싶었는지, 그들은 매일같이 나를 회의실로 밀어 넣었다.
하루에 무려 2시간. 우리는 미친 듯이 회의를 했다. 아니, 회의를 빙자한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회의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그들의 표정만큼은 스티브 잡스고 일론 머스크였다. 일은 할 줄 모르면서 궁금해하는 것은 또 더럽게 많았다.
"차장님, 이번 설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엣지(Edge)는 뭐라고 보십니까?" "혹시 모를 리스크 대비는 어느 정도 퍼센트로 잡고 계시죠?" "타 부서와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도 고려해 주셔야 합니다."
입으로 짓는 건축물이라면 이미 우리 부서는 두바이에 부르즈 할리파를 세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수많은 질문들 중 당장 내일 그려야 할 도면과 계산식에 단 1g이라도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질문은 없었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탁구공처럼 오갔고, 당연히 그 질문에 제대로 된 실무적 답변을 내놓는 인간도 없었다. 왜냐고? 자기들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니까.
그저 '나는 이 프로젝트에 심도 있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거대한 지적 허영의 장일 뿐이었다. 알맹이 없는 말잔치가 2시간 동안 이어지는 걸 듣고 있노라면, 내 뇌세포가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막상 실전이 시작되자 찾아온 침묵의 카르텔"
그렇게 요란하고 껍데기뿐인 2시간의 회의가 끝나고, 내가 내 자리로 돌아와 듀얼 모니터를 켜고 본격적인 '진짜 작업'을 시작하면 사무실엔 거짓말처럼 정적이 흐른다.
아무도 내 자리로 와서 묻지 않는다. 도면의 수치를 어떻게 빼고 있는지, 복잡한 계산식은 어떤 로직으로 풀고 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회의실에서 그토록 열정적이던 '아가리 파이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유는 몹시 뼈아프고 간단하다. 물어봐도, 내가 대답해 줘도 알아듣지 못하니까. 철저한 무지의 소산이다. 결국 실무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연차가 쌓인 경력직 차장이라도 이번 프로젝트 같은 특수한 설계는 난생처음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내야 했고, 3개월을 허송세월한 그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새로 온 능력 있는 경력직'이라는 달콤한 수식어로 내게 폭탄의 뇌관을 쥐여주었다.
살아야 했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낮에는 맨땅에 헤딩하며 유관 기관과 멱살잡이하듯 협의를 끌어내고, 밤에는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처음 보는 설계 자료와 씨름했다. 해외 레퍼런스를 뒤지고, 구글링을 하며 미친 듯이 독학했다. 10년 넘게 일하면서 이렇게 뇌에 쥐가 나도록 공부한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한 달 내내, 주말도 반납하고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야근을 하며, 빈 깡통뿐이던 프로젝트에 억지로 숨을 불어넣고 멱살을 잡아끌었다.
내가 수명을 깎아 가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상모까지 돌리는 동안, 3개월을 놀고먹은 동료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매일 저녁 6시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칼퇴의 요정'이 되어 경쾌한 발소리를 내며 회사를 떠났다. 새로 온 차장이 피를 토하며 야근하는 한 달 동안, 그들은 변함없이 평온하고 규칙적인 삶을 영위했다. 진심으로 존경스러울 정도로 한심했다.
"경력직의 발작 버튼이 눌리다"
어찌저찌 내가 피땀 눈물로 굴려놓은 프로젝트가 드디어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심하게도 납품일은 턱밑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러자 회의실 밖에서는 철저히 실무를 외면하며 입을 꾹 닫고 있던 사람들의 주둥이가 드디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퇴근 준비를 하던 누군가가 내 자리 너머로 툭 던지듯 말했다.
"차장님, 이거 다음 주 납품 일정 무조건 맞출 수 있는 거죠?" "빨리 납품해야 우리 부서 실적으로 잡히니까, 조금만 더 서둘러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 인간의 인내심에는 정해진 총량이 있고, 내 머릿속의 이성의 끈이 '투둑'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3개월을 방관한 칼퇴 요정들의 입에서 나온 저 얄팍한 '납품 독촉'은 내 인내심의 임계점을 단숨에 돌파해 버린 완벽한 발작 버튼이었다.
"그럼 진작에 뭐라도 진행시켜 두셨어야죠!!!"
나도 모르게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산전수전 겪으며 쌓아온 어른의 교양과 경력직의 여유 따위는 이미 분리수거함에 처박은 지 오래였다.
"제가 입사해서 한 달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 공부하고 도면 치고 계산해서 억지로 굴려놓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이걸 당장 납품하라고 쪼는 겁니까? 회의실에서 쓰지도 못할 헛소리 떠들 시간에 진작에 책이라도 펴고 공부를 해두시든가요! 안 그렇습니까?"
순간 사무실에 찬물을 끼얹은 듯 지독한 정적이 흘렀다. 그들의 당황해 흔들리는 동공 속에서 나는 명확히 읽을 수 있었다. '아니, 경력직으로 돈 더 받고 왔으면 알아서 기한 맞춰야 하는 거 아냐? 왜 저렇게 화를 내지?' 그들은 진심으로 본인들이 3개월 동안 무엇을 방치했는지, 그게 동료에게 얼마나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짓인지 모르는 듯했다. 무능함이 패시브로 장착되면 부끄러움도 잊는 법. 염치가 없으니 미안함도 없는 것이다.
"세월아 네월아, 안 되면 마는 거고"
그날 시원하게 들이받은 이후, 나는 묘한 해탈의 경지, 이른바 '열반'에 올랐다.
지금 나는 완벽한 '배째라' 모드다. 더 이상 남들이 싸놓은 거대한 똥을 치우기 위해 숨넘어가게 야근하며 나의 뼈와 살을 갈아 넣지 않는다. 세월아 네월아, 딱 내가 할 수 있는 정규 업무 시간 내에서만 내 페이스대로 일한다. 납품? 되면 하는 거고, 안 되면 기한 넘기는 거다. 어차피 나 아니면 이 회사에서 이 프로젝트의 'ㅍ' 자라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니까. 아쉬운 건 그들이지 내가 아니다.
일은 굴러온 내가 혼자 다 하는데, 왜 입은 3개월간 방관하던 저 썩은 고인 물들이 터는 걸까. 직장 생활을 할 만큼 해봤고 웬만한 빌런들은 다 만나봤다고 자부했지만, 오늘날 직장인들이 겪는 가장 끔찍한 재앙은 악랄한 사이코패스 상사가 아니었다. '알맹이 없는 회의만 좋아하고, 실무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부지런하게 퇴근만 하는 무능한 동료들'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직 한 달 만에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이게 어른의 밥벌이니까"
내일도 그들은 2시간 동안 회의실에서 의미 없는 허공의 질문을 던질 것이고, 나는 내 자리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묵묵히 혼자 도면을 그릴 것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묻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스트레스받고 억울하면, 당장 사표 던지고 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나 역시 입사 한 달 차에 이 환장할 노릇을 겪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퇴사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렸다. '경력직인데 어디 갈 데가 없겠어?'라는 알량한 자존심도 한몫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모니터 한쪽 구석에 띄워둔 인터넷 뱅킹의 잔고를 보는 순간, 그 서슬 퍼렇던 분노도 결국은 차갑게 식어버린다는 것을. 매달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야속한 생활비, 무심하게 날아오는 카드값, 그리고 퇴근 후 들이키는 시원한 맥주 한 캔의 평화.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지극히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군더더기 없이 유지할 '돈'이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지옥 같은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이 기괴한 유토피아로 묵묵히 출근해야만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경력직의 서글픈 통찰이랄까. '빌런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여기서 도망쳐 다른 곳으로 간들 그곳엔 또 다른 형태의 끔찍한 빌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 적어도 이곳의 빌런들은 악독하기보단 그저 해맑고 무능할 뿐이지 않은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는 이 상황을 철저한 '비즈니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회사는 저들의 무능함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그리고 내가 혼자 이 거대한 똥을 치워주는 대가로 매달 25일 내 통장에 '합의금'을 입금하는 것이다. 나의 전문성과 노동력은 딱 그 입금된 액수만큼만 제공하면 된다. 그 이상의 열정이나, 회사의 발전을 향한 헌신, 동료를 향한 전우애 따위는 내 근로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늘도 6시가 되자 사무실엔 경쾌한 퇴근의 발소리들이 울려 퍼진다. 나는 그들의 가벼운 뒷모습을 보며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다. 대신 이어폰의 볼륨을 한 칸 더 높이고,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마우스를 쥔다.
먹고산다는 건, 그리고 어른의 밥벌이라는 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무능함과 세상의 부조리를 건조하게 견뎌내며, 묵묵히 내 몫의 진흙탕을 걸어가는 것. 나는 오늘도 이 무능함의 바다에서 조용히,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노를 젓는다.
밥벌이
두 시간의 회의실엔
빌딩을 백 채나 지어 올린 화려한 입들이 살고
내 모니터 앞엔
선 하나 긋지 못한 무거운 침묵이 산다.
그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녁을 향해 떠나고
나는 무거운 마우스로 내일을 억지로 끌어당긴다.
화를 내면 무엇하나,
어차피 저들의 뇌는 해맑은 순백인 것을.
억울하면 무엇하나,
매달 꽂히는 숫자가 내 입을 단단히 틀어막는 것을.
입으로 일하는 자들과
손으로 밥벌이하는 자의
슬프고도 기괴한 공생.
오늘도 나는 '경력직'이라는 족쇄를 차고
달콤하고도 씁쓸한 월급명세서를 떠올리며
침묵의 도면 위에 밥알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