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전이 아닌 서울, 이 낯선 도시에서 다시 만났다.
진우는 훨씬 밝아졌다.
그 아이의 밝음에 어둠은 더 움츠러들었고, 술잔이 몇 번 부딪친 후 난 내 이야기를 꺼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던가.
그만큼 자존심도 상하고 어려웠던 이야기였으나 진우는 다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진우는 내 두 손을 잡아주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나라 걱정이 안 된다고. 더 잘될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스물여섯의 진심 어린 응원에 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해고통보를.
어렸을 적 상상만 했던 모든 것이 안정될 거라는 서른을 목전에 두고.
난 자존심과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위협에 몸을 키우는 복어처럼, 난 가시를 마구 세워 주변을 괴롭혔다.
회사에서는 고개를 바짝 들고, 이 세상 가장 화려한 공작새처럼 차려입고 나와 회사와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근속 연수에 비해 내가 받을 수 최대치의 위로금과
내가 원하는 마지막 근무일,
올해 일한 인센티브까지 챙겨달라고 얘기했고
회사는 한 번의 거절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난 스물아홉 12월, 유럽으로 한 달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