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주는 처음이었다.
내가 사는 대전에서 멀지 않았는데 대전과 느낌이 달랐다.
아름다운 도시였다.
한옥처럼 기와를 쌓아둔 지붕이 있는 전주역에 도착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메인 영화들이 상영되는 극장거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객사가, 그리고 한옥마을이.
켜켜이 포개져있는 기와들, 둘레가 나의 한아름보다 큰 나무들이, 돌로 쌓은 담벼락들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다. 봄이 오는 향기도, 영화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전주를 가득 채웠다.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막걸리에, 가맥(*가게맥주 : 슈퍼 앞에서 노가리와 맥주의 조합)등 전주에서 처음 느끼는 문화에 우린 너무 즐거웠다.
전주에 푹 빠졌다.
그때 남자친구는 질투라도 할 법 한데, 내가 누구와 어딜 다니든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누구와 언제 들어가든 신경 쓰지 않으니 본인과 있을 때는 일찍 들어가라고 했었다.
뭐랄까.
난 잡은 물고기였나.
한창 서운했었다.
난 일주일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동네 친구와 만나 담배는 한대 피우고 들어가던 그에게.
벚꽃 피는 5월 초.
그날은 진우와 마감을 하고 나오니 벚꽃이 한창이었다.
본인의 아지트를 소개해 주겠다며 주변 골목골목을 누볐다.
20살의 소년에게 무슨 대단한 아지트가 있었으랴.
지금은 생각도 못할..
아파트 옥상!!
함께 별을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오리온자리를 함께 보았으려나.
그 뒤로도 우린 정말 많은 영화를 함께 보았다.
특히 그때에 일본영화를 많이 상영했다.
잔잔한 감성과 영상에 매료되었다.
진우의 숨겨둔 마음도 어느새 천천히 스며들었다.
진우는 어린 신부의 문근영을 정말 좋아했다.
그래.. 문근영 너무 귀엽지.
진우는 장화홍련의 문근영도 좋아했다.
그래.. 연기도 잘해.
작고 귀여운 문근영을 좋아하는 건가?!
내가 뭘 이런 걸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
진우가 좋아한다는 영화는 다시 찾아보았다.
그가 좋아하는걸 나도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오랜만에 우리의 근무 스케줄이 겹쳤다.
나는 1층 캐셔에서, 진우는 2층 홀에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1, 2층을 오가는 진우에게 대뜸 부점장님이 말씀하신다.
"소희 오랜만난 남자친구 있어 진우야~"
갑자기 뜬금포 핵미사일이 던져졌다.
뻘쭘한 나는 딴청을 피웠고,
"알아요~"
짧은 대답과 함께 진우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부점장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 그런 사이 아니에요."
"진우가 널 좋아하는 거 같아서 그래"
진우는 내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작은 쪽지와 편지들을 건네기도, 데이트 같은 시간도 보냈었지만
항상 선을 지켰다.
고백은 없었다.
4.
벚꽃이 다 지기 전, 남자친구가 벚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해가 거의 져물어 갈 때쯤, 남자친구가 친구 한 명을 대동하고 날 데리러 왔다.
이제는 둘만은 잘 만나지 않는다.
어둑해진 저녁, 벚꽃이 잘 보일랑 말랑
벚꽃아래에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저녁을 먹고 차에 함께 탔다.
남자친구는 친구와 담배를 피우려고, 잠시 나를 차에 두고 둘이 저 앞에 서있다.
핸들 아래 콘솔에 그는 폰을 두고 나갔다.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문자 수신함을 열어보았다.
문자수신함(0)..
영업을 하는 사람인데, 문자수신이 0 개인게 말이 되는가.
문자 발신함엔 그가 미처 지우지 못한 문자가 남아 있었다.
'감기조심하고 이불 잘 덮고 자요. 잘 자요'
나에게 보낸 문자는 아니었다.
기분이 참.. 이상하네.
'이런 문자는 어떤 사람에게 보낼 수 있는 거지.'
담배를 다 피우고 들어온 남자친구는 친구와 함께 차에 탔다.
그는 나를 먼저 집에 데려다주고, 또 친구와 떠났다.
별일이 없었는데 냉랭해진 내 태도가 이상했나 보다.
남자친구가 갑자기 연락에 집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