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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Ⅹ. 여름. 그리고 영원한 이별과 그리움

by 이서

다시 여름이었다.

첫 만남도 여름이었고, 또 다시 몇 번의 계절을 지나 이렇게 또다시 여름 앞에 서 있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겨울이 지나고, 나는 그냥 살아갔다.

군대를 다녀왔고, 대학을 졸업했고, 사회인이 되었다.

취업 후 하루하루는 숨 가쁘게 흘러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떠들고, 지쳐 잠드는 나날.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녀를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들려온 익숙한 노래, 바람에 스친 향기, 우리가 함께 걷던 거리.

그 모든 것이 불시에 나를 붙잡았다.

나는 끝내 그녀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잊을 수 없었다.

퇴근 후 오래된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때 그녀와 나란히 걸었던 길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발길이 이끌려 익숙한 곳으로 향했을 뿐.

그런데 멀리서 걸어오는 한 사람.

순간 심장이 요동쳤다.

그녀였다. 조금은 달라져 있었지만, 내 기억 속의 그녀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였다. 고요한 여름 햇살 속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발 내디디려 했다.

그러나 몇해 전, 전철역의 기억이 떠올랐다.

돌아보지 않고 떠나던 그녀의 뒷모습.

그리고 그 이별 뒤에 숨겨져 있던 무거운 사정들.

나는 알았다.

내가 곁에 없는 것이 그녀의 삶에는 더 평온한 길이라는 것을.

내가 붙잡는 순간, 그녀가 짊어진 짐은 더 무거워질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멈췄다.

그녀는 그대로 저멀리 내 앞을 지나쳐 갔고, 나는 한동안 조용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멀어지고, 여름빛 속에 사라져 갈 때까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순간, 나는 미소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잘 살고 있었나 보네.”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그녀가 여전히 자기 삶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나의 길을 걸었다.

조금은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그녀는 이제 나의 현재가 아니라, 아름답게 남겨진 추억이었다.

그리움은 여전히 가슴 한편에 자리했지만,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영원한 이별이었으니까.

언젠가 먼 훗날, 또다시 우연히 마주친다 해도.

나는 오늘처럼, 그저 미소 지으며 가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기억 속에서만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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