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날이 화창했다. 괜스레 산뜻해진 마음으로 방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원래는 태양의 기운이 강한 날보다 구름이 가득 낀 날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빛에 민감해 햇빛이나 밝은 조명에서 눈을 잘 뜨질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둡고 습한 하숙집 지하방에 살다 보니, 햇빛이 새삼 반가운 손님이 됐다.
이런 날에는 대청소를 해야 한다. 미뤄두었던 빨래부터 시작했다. 마히네 집에서 커다란 대야를 빌려와 빨랫감을 물에 담가놓고, 노란 빨랫비누로 얼룩을 박박 문질러 깨끗한 물에 헹궜다. 그리고 하숙집 옥상에 빨래를 잔뜩 널어놓고 방으로 돌아와 비질과 걸레질을 하고, 화장실 벽과 바닥을 거품 내어 구석구석 문질렀다. 내 마음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묵는 방은 침대, 작은 원형 테이블과 의자, 나무 옷걸이가 전부인 2평 남짓 작은 방이지만, 기계의 도움 없이 내 손으로만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진이 빠지는 일이다. 그래도 이렇게 청소하고 나면 육신은 피곤해도 마음은 개운해진다. 금세 더러워질 거란 걸 알지만 청소를 할 때만큼은 새로운 마음이 된다. 깨끗해진 방을 둘러보곤 청소는 결국 나 스스로를 돌보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후에는 시내에서 미힌두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몇 년 전, 아세니에게 수학 과외를 해줬던 수학 교사다. 지역 방송이나 라디오에도 종종 출연하는 유명 수학 학원의 원장이기도 하다. 이전에 하숙집 인연으로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잠시 스쳐 지나간 인연에 가까웠다. 그는 내가 스리랑카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곤, 시내에서 차 한 잔 하자며 연락해 왔다. 안 그래도 스리랑카의 사교육 문화에 궁금한 게 많아 오늘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시내에 나가 그를 기다렸다. 아침에는 분명히 날이 맑았는데, 갑자기 무슨 변덕이 생긴 건지 하늘빛이 검게 변했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더니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산이 있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피했지만, 입고 있던 흰 치마는 진흙을 피하지 못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서 검은 덩어리들이 튀는 바람에 옷이 더러워졌다. 그리고 미힌두에게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비가 많이 오네. 다음에 보는 거 어때?」
그는 만남을 미루고 싶어 했다. 나는 담담하게 그러는 게 좋겠다고 다음을 기약하자고 답장을 보냈다. 그가 괜히 미안해할까 봐 이미 밖에 나와 있다고 말하진 않았다. 사실 그를 기다리면서 그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굵은 빗방울을 확인하곤 외출할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거리에 홀로 선 채, 흰옷에 진흙이 남긴 흔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불현듯 몇 년 전 스리랑카에서 비 때문에 벌어진 일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스리랑카 NGO에서 시민운동 활동가로 봉사하고 있었는데, 기관장은 휴일에 불가피하게 회의가 잡혔으니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통보했다. 그런 날은 365일 중에 1일일 뿐이지만, 어쩐지 여왕벌을 뺏기는 양봉업자처럼 억울한 마음으로 일요일을 맞았다. 하늘도 화가 났는지 아침부터 강한 빗줄기를 퍼부었지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누워있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출근했다. 우산을 쓰긴 했지만 폭우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은 채로 사람들을 기다렸는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기관장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오시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떻게 움직였어? 너 정말 재미있는 애구나. 집에 얼른 들어가."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저 약속을 지켰을 뿐인데, 졸지에 재미있는 사람이 됐다. 근데 그때는 정말 그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회의는 예고 없이 취소된 것이다. 현지 직원들은 비가 많이 오니 회의는 당연히 취소될 거라고 생각하고 오지 않았다. 이럴 때는 마음의 장단이 잘 맞는 스리랑카 사람들이다. 아무리 그래도 외국인 봉사자에게는 따로 연락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당연히 안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씁쓸하고 허탈했다.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비를 뚫고 출근한 나만 미련한 사람이 됐다.
스리랑카에 비가 오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춘다. 처음에는 날씨 핑계를 대며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제멋대로 약속을 취소해 버리는 사람들에게도 심통이 났다. 스리랑카에서 몇 번의 우기를 겪고 나서야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스리랑카의 비는 한국의 비와 다르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는 순식간에 도로를 잠기게 한다. 산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지대가 낮은 집은 물에 휘청일 수 있다. 낙뢰, 감전 그리고 교통사고의 발생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비가 올 때는 이동하지 않는 게 좋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는 건 무례한 일이다.)
‘잠시 멈춤’ 그건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었다. 비가 올 때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부처님 또한 우기 때는 외출을 삼가고 수행에 정진하지 않으셨던가. 지금도 스리랑카에는 우기 3개월 동안 비를 피해 집중 수행하는 우안거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나는 뭐가 그리 급해 자연의 변화를 무시하고 서두르는 것일까. 그동안 타인에게 책임을 다하려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나를 놓치고 있었다. 나의 안전을 뒤로하고 이곳의 모양에 내 몸을 구겨 넣어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항상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정말 괜찮았던가. 이 나라의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 배려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나야말로 무책임했다.
한국에서 이주민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았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 돌봄이었다. 나를 돌보는 것도 하나의 책임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더 이상 스리랑카 때문에 나를 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지나치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스리랑카의 흐름 속에서 나를 살리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 더미나 걷으러 가야겠다. 어쩌면 빨래를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결국 더러워졌다가 다시 씻어내는 일의 반복이다. 스리랑카에 머무는 동안 청소를 여러 번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