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18일, 한양 경복궁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18일, 한양 경복궁
정전의 등롱(燈籠)이 잔잔히 흔들렸다.
비가 걷히고 난 뒤의 공기는 맑았으나,
정전 안을 도는 숨결을 눅눅했다.
비가 그친 뒤의 돌바닥이 차갑게 빛났고,
주렴 너머로 사관들의 붓끝이 바삐 흔들렸다.
그 때 문지방을 넘어온 전령 하나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흙과 땀, 탄내가 뒤섞인 냄새가
한 번에 전각 안으로 밀려들었다.
“아룁니다…동래, 이미 궤멸—”
전령의 목이 갈라졌다.
도승지가 봉인에 진흙이 눌어붙은 장계를
급히 받아 펼쳤다.
먹선이 물에 번져 글자마다 거친 숨이 배어 있었다.
“경상 좌수사 박홍, 동래성 구원 실패 후
경상 좌수영의 함선을 자침하고 경주로 퇴각”
“경상 좌병사 이각, 울산 병영 군사 방치하고 북으로 도주”
“울산과 경상좌도, 무방비”
정전의 바닥을 훑던 웅성거림이 한 번에 잦아들었다.
병조판서가 입술을 굳혔다.
도승지는 계속 장계를 이어 읽어 나갔다.
“회야강 전투 패배, 경상좌병영과 울산 함락”
“영산 현감 강효윤, 양산을 비우고 밀양으로 퇴각”
선조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손끝으로 팔걸이를 두 번, 세 번 두드렸다.
그의 낯빗이 점점 창벽 해져갔다..
한 신료가 앞으로 나섰다.
목소리는 아직 성성했다.
“전하, 삼포왜란의 준동과
다르지 않을 수 있사옵니다.
도적 무리의 들끓음이오니,
상례대로 막으면—”
그의 말끝을 유성룡이 차분히 가로막았다.
“전하, 이번은 무리의 준동이 아니라
군의 전진입니다.
병선과 보병, 조총의 열이 정연하고,
각 성을 포위하여 진법을 편 흔적이 역력하옵니다.
‘도적’으로 부르기에는 행군의 깊이가 다릅니다.”
도승지가 다음 장계를 넘겼다.
종이 구석이 젖어 너덜거렸고,
글씨가 급히 쓰여져 획마다 숨이 달렸다.
“작원관 박진 군 붕괴. 박진, 밀양성에 불을 지른 뒤 퇴각”
“경상감사 김수, 영산으로 물러났다가 초계로 이동”
“이일, 상주에서 고니시 군에 패주. 북으로 이동”
정전의 기둥들 사이로 추위가 스며들었다.
순간, 전각의 공기가 얇아졌다.
병조판서가 앞으로 나왔다.
“전하… 경상 좌수사 박홍이
스스로 함선을 가라앉히고 물러났사옵니다.
좌병사 이각 또한 군을 유기하고 달아났사옵니다.
동래에서 양산, 울산까지 맥이 끊기고,
상주마저 무너졌사옵니다.”
“그러면,”
선조의 목소리가 아주 낮게 내려왔다.
“한양으로 오는 길이 열렸다는 말인가.”
“예… 전하. 그 길목을 지금이라도 막지 못하면—”
정전의 동쪽 기둥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신료들의 언성이 엇갈렸다.
누군가는 “평양의 병마를 내려 쓰자”고 했고,
누군가는 “수도 성문을 수리하며 시간을 벌자”고 했다.
말들이 서로 부딪혀 빗방울처럼 흩어졌다.
“병조.”
“예, 전하.”
“북방을 맡은 장수 중, 오늘 당장 말을 탈 자가 누구냐.”
병조판서가 잠깐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신립이 있사옵니다.
북로를 지켜 오랑캐의 말발굽을 꺾던 자이옵니다.
기병 운용에 뛰어나, 급한 길목을 지키게 하시면—”
선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립을 불러라.
남쪽으로 급파하여 충주에 진을 치게 하라.
낙동과 작원에서 우리가 잃은 것은 길이다.
길을 막으면 저들을 그곳에 가두고 밀어낼 수 있다.”
유성룡이 덧붙였다.
“신립에게 기병에 보병을 더해 주시옵고,
지형을 살펴 강변을 끼고 방어하도록 엄명하시옵소서.
적은 넓은 들을 좋아하고,
우리말은 좁은 창자길을 싫어합니다.
물과 절벽 사이에서 적을 가두고
적의 포진을 찢어야 합니다.”
“좋다. 신립을 즉시 부르라. 도승지.”
“예, 전하.”
“경기·충청·강원에 동원령을 급히 내리고,
한강 이북의 군량을 오늘부터 남송 하라..
경상감사 김수에게 사자 보내어
후방 정비와 백성의 피난을 맡기라.”
호조판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하, 군량이 모자랍니다.
창고는 겨울을 넘기며 비었고,
수레는 늦은 비로 길에 빠질 것이옵니다.”
유성룡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보내야 합니다.
지금 보내지 못하면,
내일은 길에 피가 먼저 깔릴 것이옵니다.”
말들이 오가며, 종이 위에 명이 박혔다.
‘신립, 남으로’—.
도승지가 붓끝을 세워,
신립의 부름과 군량의 출납,
성 수축의 명을 쉼 없이 써 내려갔다.
승정원 나인이 질끈 묶은 문서를 가슴에 안았다.
비늘 같은 빗소리가 다시 장막을 스쳤다.
그때, 문 밖에서 또 다른 전령이 들어왔다.
무릎을 꿇기도 전에 고꾸라져
두 손으로 장계를 밀어 올렸다.
“전하… 양산에… 이미 적의 본대가…”
유성룡이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고개를 들었다.
“전하, 고니시 본대가 양산을 먹고,
길을 더 넓히고 있사옵니다.”
선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그늘이 옆으로 기울며 그의 옆모습을 덮었다.
“이 나라가 도적의 난이라고 부를 수 있는 때를
지났다는 말이구나.”
“병조, 다시 써라.
신립에게는 군사와 말,
쇠와 화살을 끝까지 얹어 보내라.
이일에게는… 눈을 감을 겨를도 주지 마라.
눈을 뜨고 길을 가게 하라.
상주에서 물러난 발을, 충주까지 멈추지 말라 전해라”
유성룡은 마지막으로 한 줄을 더 청했다.
“전하, 민심을 모을 글을 내려 주시옵소서.
왜군이 바다를 건너왔으되,
길은 우리의 마음에 있사옵니다.
각 도의 향교에 효유를 붙여,
백성들이 성을 버리지 않게 하시옵고,
의병을 모을 자에게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선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써라. ‘나라가 급하니,
백성의 충이 곧 성(城)이다.’ 그렇게 써라.”
문서들이 봉해지고, 전령들이 다시 일어섰다.
비는 잦아들었다.
그러나 정전의 돌바닥은 여전히 축축했다.
전령들의 발뒤꿈치가 물기를 튕기며 지나갔다.
그 물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북방의 장수가 말을 재촉해 남으로 내려올 것이다.
그의 말발굽 소리가 충주 탄금대의 강물 위에서
어떻게 울릴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밤이 깊어 들수록, 정전에는 다시 고요가 앉았다.
그러나 사관들의 붓끝은 멈추지 않았다.
‘신립, 남진(南陣)’, ‘군량, 남송(南送)’, ‘의병, 통문(通文)’.
얇은 종이 위에 굵은 운명이 차곡차곡 놓였다.
장막이 흔들릴 때마다,
종이의 모서리가 아주 미세한 소리를 냈다
—칼을 갈 때의 마찰음과 닮은.
그리고 그 소리 위로,
누군가의 한마디가 낮게 겹쳐졌다.
“우리를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