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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비문학 만점, 문학&문법 80점대, 왜?

셰련된 문학 작품 읽기를 허하라

by 세니사

중 1이지만 수능 킬러 문항들도 풀어내는 학생이 있다.

고3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도 비문학은 늘 만점이다.

반면, 문학 분야 문제들은 늘 80점대다.

학교 국어 시험도 마찬가지다.

문법 문제도 곧잘 틀린다.


국어 점수만 유독 80점대이니, 어머니는 애가 타서 결국 유명 국어 학원에 등록한다.

이제 내신 국어 점수는 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수능 문학 분야도 유명 국어 학원 수업으로 만점, 아니 1등급이 가능할까?


이 학생은 비문학 텍스트에 포함된 정보들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관련 있는, 작은 정보를 놓치는 법도 없다.

그런데 이 분석과 종합 능력이 문학 텍스트에서는 작동을 안 한다.

아주 단순한 문구에서조차 그렇다.

이를테면, 청소년용으로 아주 쉽게 풀이된 <모죽지랑가>를 읽었다.

제목 첫 글자 '모'는 그리워한다는 뜻이고, '가'는 노래라는 뜻이라는 정보도 확인한다.

작품을 읽었으니 '죽지랑'이 인물 이름이란 사실을 안다.

그런데 작품을 다 읽고도 작품 제목의 의미를 모른다!

다시 한번 '모'와 '가'의 뜻을 확인한다.

역시, 모른다.

작품에 '죽지랑'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그래도, 모른다.

비문학 텍스트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정보들의 관계도 단번에 파악하는데 왜 이 단순한 세 가지 정보가 종합이 안 될까?


작품을 읽는 동안, 화자가 거듭 드러낸 '그리움'의 정서를 이 학생은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제목에 '모'의 뜻을 알아도 이 학생으로서는 죽지랑과 '그리워하다'가 뭔 상관인지 통 감이 안 잡혀 감히 연결을 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 학생은 언제나, 시나 소설에 미묘하게 혹은 비유적으로 혹은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표현된 '정서'를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

또한 현실에서 또래들의 감정 파악에도 다소 엇박자를 낸다.

'이과형'이라 그렇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이 학생이 자발적으로 읽는 책은 모두 '소설'이다.

단, 모든 감정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사건 중심의 청소년 소설.


천성적으로 논리에 강하다 해도, 유년기부터 섬세하고 우회적으로 감정 표현이 되어 있는 문학 작품을 천천히 읽으면서 인물의 감정을 헤아리는 경험을 꾸준히 해 왔다면 문학 작품에 담긴 정서를 포착하기가 이토록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감까지는 못 한다 해도 말이다.

줄거리 중심의 가벼운 소설책에 길든 문해력이 중고등 국어의 문학, 나아가 현실에서 상대의 감정 파악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경우이다.


요약하면, 이 학생의 경우는 논리적 이해력은 잘 발달되어 있지만 감정 이해력은 미숙하고, 기억력이 좋은 편이지만 스스로 외우기는 귀찮아 외우지 않다 보니 국어 과목 안에서 불균형이 있다.

그러니 국어조차 암기 과목인 학교 시험에 맞추어 반복 학습을 시켜주는 국어 학원의 힘으로 내신 국어 성적은 분명 오를 것이다.

물론 수시 전형에 성적이 반영되는 마지막 학기까지 계속 국어 학원에 다녀야 그 성적이 유지되겠지만.

하지만 내신의 외부 지문이나 수능에서 낯선 문학 지문을 만났는데 숨어 있는 뜻이나 감정을 묻는 문항이 출제된다면 여전히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괜찮다.

수시 모집 비율이 높으니 국어 학원비를 꾸준히 지출한다면, 이 학생의 경우 내신으로 사대문 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입시는 아직도 암기가 최강의 무기이니.

물론 모든 과목을 외워야 하는 학생들의 머리에는 과부하가 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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