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와 미완을 분석하라
일부 설명글, 설명과 주장이 혼재된 글, 설명글 같은 주장글은 설명 방법의 구조를 엄밀히 따르지 않는다. 이런 글의 핵심 내용은 설명 방법을 분석하는 정도로는 파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시글을 통해 알아보자.
<다음> 글은 경희대학교의 2026학년도 인문체육계열 모의논술고사 제시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글은 궁극적으로 주장글이지만 서술 방식에 설명과 논증이 혼재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문장이 사실이고 어떤 문장이 의견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글을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 우선, 각 문장이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글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며 읽어 보자.
<다음>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난화설은 각 나라, 각 지역의 질적인 차이를 무시합니다. (...) 각지의 인간 활동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표시됩니다. (...) 온난화설에 기초한 환경론은 지역적 에코시스템에 입각하는 환경론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금까지 지역에 근거한 환경운동을 파괴하고 맙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생각하는 환경론은 각국, 각 지역의 다양한 조건이나 상태를 무시하는 신자유주의와 똑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농산물의 자유화 등에 의해 농업을 기초로 한 각지의 에코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자 그에 근거한 환경운동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한편 온난화는 지구 규모의 현상이자 지역 환경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산화탄소 온난화설에서 환경론의 글로벌리제이션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글로벌리제이션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글로벌리제이션에 의해 환경운동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온난화설 이후 환경론자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삭감을 인류 공통의 과제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메리카의 환경 활동가 중에는 원전을 긍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산화탄소를 삭감하는 것이 지상의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타입의 환경론자는 자연환경의 문제를 그저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만 보고 있지, 그것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라는 점을 보지 않습니다.
- 출처 : 경희대학교 2026학년도 모의논술고사 인문체육계열 제시문 [다](원전 : 가라타니 고진, 『자연과 인간』)
이 글을 읽은 고등학생들이 제시하는 핵심 내용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다.
가장 많은 답변은 중언부언 혹은 우왕좌왕이다. 듣는 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말하는 이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
다음으로 많은 답변은 ‘모르겠다’이다. 생각을 해봐도 모르는 학생이 있고, 글의 내용과 구성이 복잡하니 생각을 포기해서 모르는 학생도 있다.
가장 적은 답변은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난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원인과 해결책은 지역적 특성을 간과하고 있다’ 정도이다. 그나마 모범 답안에 ‘근접한’ 답변이다. 그러나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제 세 개의 인공지능이 제시한 요약 문장을 검토하되, 필자가 밑줄 그은 구절들에 주목하자.
▶ Perplexity : 이 글은 이산화탄소 감축을 중심에 둔 지구적 온난화 담론이 지역별 조건과 에코시스템,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권력 관계를 지워 버리며 신자유주의적 글로벌리제이션과 유사한 방식으로 기존의 지역 환경운동을 변질시킨다고 비판한다.
▶ Gemini : 이산화탄소 중심의 온난화설은 환경론의 글로벌리제이션을 초래하여 지역적 특수성과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며,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처럼 지역 생태계와 본래의 환경 운동을 변질·파괴하고 있습니다.
▶ ChatGPT : 이산화탄소 중심의 온난화 담론이 환경 문제를 ‘자연과 인간의 문제’로만 환원함으로써, 실제로는 인간 사회 내부의 권력·경제·정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를 가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위 제시문의 핵심 중에 핵심, 즉 궁극적 주장은 글의 마지막 문장에 포함되어 있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구절에 담겨 있다. 문제는 이 글의 설명 방법이 명료하지 않고 문장들의 관계가 복잡하며, 일부 설명이 생략되어 있는데 마지막 문장은 이전 문장들로부터 비약되어 있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대체로 이 궁극의 구절이 필자가 끝내 말하고자 하는 바라는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글을 보다 능숙하게 읽으려면, 귀찮아도 당분간은 ‘가시적 분석’이 방책이다. 아래 도표는 위 글을 ‘설명 혹은 논증 방법’에 따라 분석하고, 독자로서 이해가 곤란한 원인을 ‘서술의 문제점’ 측면에서 정리한 결과이다. 단, 아래 도표는 요약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방식과 그 빈틈을 드러내기 위한 분석 결과물이다.
이렇게 분석해 보면 저자가 궁극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대처하기를 요청한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란 국가 간 책임 분담, 산업 구조, 에너지 선택, 자본의 이해관계처럼 환경 문제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 그래서 핵심 내용 요약에 이 점을 빠뜨리면, 속된 말로 ‘앙꼬 없는 찐빵’을 만든 셈이 된다.
하지만 글을 매번 이렇게 읽자면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니 차라리 안 읽어버리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시도하되, 몇 달을 꾸준히 지속하기를 권한다. 그러다 보면 애써 시각화하지 않아도, 읽으면서 저절로 머리 속에서 스르륵 분석되는 날이 온다.
그런 날이 오면 마침내 여러분은 고급 수준의 문해력을 확보한 것이다. 고급 수준의 문해력을 여러분 몸에 장착되면, 이해와 해석 그리고 판단과 결정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여러분의 잠재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지평에 들여서게 된다. 인공지능을 협력자로 삼아야 하는 시대에 영어, 수학만큼 어쩌면 그 이상 쓸모 있는 능력이 되지 않겠는가.
☆ 『발목 잡힌 문해력』 연재는 이번 글로 마칩니다. 새해도 되었으니, 좀 다른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