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나 횡단보도 등 일상에서 만난 아이들의 엉뚱하고 귀여운 순간들
얼마 전에 버스를 탈 일이 있었다. 일정을 끝내고 난 뒤 탄 버스라 지쳤었다. 낯선 동네에서 몇 번 타보지 않은 버스를 타서 혹시 내리는 곳을 실수할까 봐 매번 끼던 이어폰을 끼지 않은 채 창 밖을 구경했다. 정류장 이름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이 꾸준하게 흘러나왔다. 서너 정거장을 남겨두고 또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그 뒤로 난데없이 아주 맑은 리코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맑고 또렷한 소리였다. 어떠한 음도 망설임이 없었다. 몇 번을 연습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좋은 연주였다. 처음에는 버스 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인가 했지만 아무리 들어도 그건 버스 안에서 연주되고 있는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좀 전에 초등학생이 버스를 탔었다. 리코더를 들고 탔기에 시선이 갔다. 요새도 학교에서 리코더를 배우나 보구나, 생각했었다. 그 아이가 소리의 주인인 모양이었다. 그 연주는 1분도 안되어 그쳤지만 버스 안에서 잠깐 들리던 리코더 소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또 기억나는 초등학생이 있다. 작년 늦여름 밤에 통영에 디피랑이라는 테마파크에 놀러 갔었다. 디피랑은 통영의 남망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에 벽화마을의 지워졌던 벽화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콘셉트의 테마파크다. 큰 도깨비를 중심으로 홀로그램을 이용한 여러 가지 미디어 아트를 조성해 놓았다. 입장 직후에 안내요원이 흰 스크린에 도깨비 홀로그램을 띄워주면서 디피랑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감성적인 시간이 있었다. 다 큰 어른인 나도 깜깜한 밤에 갑자기 떠오른 도깨비 모습에 눈이 커졌다. 동화 같고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곳에는 초중학생이 참 많았다. 그 애들은 그 광경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초등학생 남자애가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홀로그램 폼 미쳤다!”
나는 그 말에 친구랑 웃음이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주변 어른들도 우리처럼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그 애도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로 가장 감명 깊은 표현을 한 것이었으리라.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일도 있는데, 집 앞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본가에 있는 우리 집 앞의 횡단보도는 그때 당시만 해도 신호등이 없었다.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 후 눈치껏 건너야 했다. 그런데 늘 차가 많이 지나다녀 적절한 순간에 안전하게 건넌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날 횡단보도에는 나처럼 길을 건너려는 듯한 사람이 있었다. 내 허리춤까지 오는 작은 초등학생이었다. 양손으로 어깨에 맨 가방 끈을 꼭 쥐고 두려운 표정으로 있길래 같이 길을 건너주었다. 걸음걸이가 느린 그 애에게 맞추어 천천히 같이 걸었다. 걔는 길을 다 건너고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어른 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걸어갔다. 길 건너기 전의 두려웠던 모습은 없었던 사람처럼 발걸음이 씩씩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어떻게 이렇게 엉뚱하고 순수할까,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 꼭 그렇게 재밌는 순간이 생긴다. 그 순간들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온기를 가진 채 남아 때때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