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던 세계, 연예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는 연습생이 되었다.
순조로움도 잠시, 첫 데뷔조가 정해지자마자 회사가 반토막 났다. 연습생들은 흩어졌고 나도 다른 회사로 옮겨졌다.
낯선 사람들, 낯선 환경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드디어 새 데뷔조가 정해졌다. 동갑 친구, 동생과 언니들. 나이는 제각각이었지만 바라보는 곳은 하나였다.
데뷔.
꿈을 향해 달리던 몸은 현실에서 먼저 무너지고 있었다. 소심했던 아이는 지나치게 대범해졌고, 늘 웃던 아이는 말이 줄었다. 이유는 같았다.
혹독한 연습보다 더 혹독했던 다이어트. 회사에서 정해준 체중에 맞춰 아무리 살을 빼도 카메라 테스트에 나오는 얼굴은 넙죽했다.
방법은 하나뿐. 굶기. 새끼손가락만 한 초콜릿 한 조각으로 매일을 견뎠다.
그 무렵이었다. 어제까지 함께 연습하던 친구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빈자리는 너무 금세 채워졌고, 씁쓸함만이 남았다.
"얘들아, 움직여. 그 정도로 안 죽어. 실력 있는 애들은 더 날뛰고, 실력 없는 애들은 예쁘게, 눈치껏 잘 날뛰자."
그렇게 우리의 그룹명이 발표됐고, 데뷔곡도 정해졌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다시 꿈처럼 느껴졌다.
각자 파트를 불러보며 웃고 떠드는 사이, 한쪽 공기가 조금씩 식어갔다. 멤버가 많다 보니 메인 파트까지 쪼개진 게 문제였다. 항의가 터졌다.
"피디님, 쟤가 왜 제 파트를 불러요?"
돌아온 건 맡은 파트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뿐이었다. 짧은 파트 하나가 개인의 기회와 생존을 가른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연습실의 온도는 달라졌다.
결국 일이 터졌다.
연습실 문을 열자, 뒤섞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눈앞은 난장판이었다. 비명, 울음. 바닥에 나뒹구는 물병들. 머리채를 잡고 엉켜 있는 두 멤버.
소동은 매니저 오빠들이 뛰어와서야 멈췄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뿌옇게 서린 거울이 우리가 흔들린 흔적을 감춰주었다.
드디어 데뷔 무대 리허설 날.
분주한 숨결에 긴장은 더해졌다. 우리는 무대 뒤에서 둥그렇게 모여 손을 겹쳤다.
"야, 그때 미안해..."
"나도 미안해... 울지 마, 나까지 눈물 나잖아."
"다들 그만 울어. 첫방부터 팅팅 부어서 나오겠다~"
"우리 잘해왔잖아. 할 수 있어."
그 진심들이, 흩어졌던 마음을 다시 한데 모았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한 번, 두 번. 빛이 켜지기 전의 어둠은 끝없이 깊었다. 계단을 오르는 순간 전율이 온몸을 스쳤다.
넓은 무대가 멤버들로 꽉 찼다. 수많은 밤을 버틴 우리는, 함께라서 더 빛났다.
대형 안의 내가 서야 할 자리. 내 첫 무대.
그리고 세상이 우리를 향해 하얗게 터졌다.
조명이 폭발했고, 음악이 쏟아졌다.
우리의 노래가,
내 노래가 시작되었다.
(이번 회차에서는 특정 인물이 연상되지 않도록 멤버 관련 설정 일부만 최소한으로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