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던 세계, 연예계
활동이 무르익어갈 즈음, 회사는 우리를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밀었다. 먼저 개인활동이 시작된 건 멤버들 중 네 명이었다.
예능으로 빠진 가연, OST와 솔로 앨범을 준비하게 된 나예와 다인, 연기 쪽 준비에 들어간 나. 각자의 이름 옆에 다른 스케줄이 하나씩 올라갔다. 정해준 임무를 수행하듯, 그 스케줄을 따라 하루하루 움직였다.
그때부터였다. 같은 꿈을 가지고, 같은 빛을 향해 달리던 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연말 무대를 위해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날. 연습실엔 어딘가 낯선 공기가 깔려 있었다. 누군가는 바닥만 보며 폰을 만지작거렸고, 누군가는 거울에 기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촬영을 마치고 조금 늦게 도착한 가연이 장난스레 손을 비비며 들어왔다.
"미안, 미안! 10분 늦었으니까 커피 열 잔 쏠게!"
뿌연 입김에 실려 나온 밝은 목소리는 금세 힘을 잃고 꺼져버렸다.
"잘 나가는 분인데, 우리가 기다려드려야지. 어차피 네가 메인이고 우린 뒤에 병풍이잖아. 안 그래, 얘들아?"
한 멤버가 말끝을 길게 끌며 옆에 있는 멤버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순간, 차가운 눈빛들이 번져갔다. 그제야 보였다.
연습용으로 붙여둔 바닥 테이프 선. 그 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가연, 나예, 다인, 나. 우리 네 명은 왼쪽. 나머지 멤버들은 오른쪽.
"개인활동 하니까, 눈에 뵈는 것도 없나 보네."
또 다른 멤버의 말 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날의 연습은 시작부터 끝까지 박자가 맞지 않았다.
며칠 뒤, 단체메시지방에 생일파티 사진이 올라왔다. 풍선, 케이크, 샴페인, 조명. 멤버들 모두가 웃고 있었지만, 우리 넷은 없었다. 바로 가연이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언제 생일파티 했어? 말도 안 해주고 뭐야. 우리 이번에 합동생파 하기로 했었잖아.]
이어서 올라온 한 문장.
[그냥 안 바쁜 우리끼리 했어.]
잠깐 조용해졌던 메시지창은 곧 생일파티 사진들로 끝없이 이어졌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되었다. 겉은 누구보다 따뜻해 보였지만, 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그 차가움은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닿았다. 촬영장 화장실. 은밀한 공간의 울림이 내 귀에 꽂혔다.
"너도 솔로활동 시켜달라 그래."
"걔네 다 스폰으로 꽂힌 거야."
"헐, 진짜야?"
"내가 같은 팀인데 그것도 모르겠어?"
나도 모르는 내 소문,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루머가 우리 멤버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 밤, 모두가 떠난 연습실에 혼자 남았다. 바닥엔 다 마시지 못한 생수병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발끝에 닿자, 물이 일렁였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우리 같았다. 함께 울고 웃던 숨결이 스쳐 지나갔다.
서로가 미성숙했던 우리가, 꿈을 지키기 위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버티는 것.
어쩌면 그것도, 이 세계의 또 다른 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실제 인물이 특정되지 않도록, 멤버 관련 설정을 일부 조정했으며 가연, 나예, 다인 으로 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