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식는 동안

낯선 호의

by 신리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커피 맛이 달라졌다.

쓴맛은 여전했는데, 혀끝에 남는 온기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평소처럼 출근길에 들른 카페의 문을 밀었을 뿐인데, 눈이 먼저 그를 찾았다.


회색 셔츠, 검은 슬랙스.

익숙한 듯 낯선 뒷모습이었다.


‘설마 또…’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순간, 그는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괜히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가 먼저 다가왔다.

“오늘은 아이스로요?”


그 한마디에, 묘하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가 알 리 없는데.

어제, 커피를 흘릴 뻔한 그 순간, 자신이 무심코 “이제는 뜨거운 건 질렸어요.”라고 중얼거렸던 게 떠올랐다.


“… 기억하시네요?”

내가 미소를 띠며 말하자, 그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더워서요. 딱 그런 날인 것 같아서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LP처럼 낮고 부드러웠다.

잔잔하게 스며드는, 물처럼.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둘 사이엔 말이 없었다.

대화가 끊긴 건데도 어색하지 않았다.

가만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그 손끝이, 어쩐지 기억났다.

커피 대신 자신을 붙잡던, 그 짧은 순간의 온도.


“이거요.”

그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아까 흘릴 뻔한 커피 대신이에요.”


안에는 차가운 음료 한 병이 들어 있었다.

라벨이 반쯤 벗겨진, 편의점 어디서나 살 수 있는 평범한 음료였다.

그런데도, 그 작은 호의가 묘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요.”

내가 머뭇거리며 말하자,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냥요. 오늘은 좀 그런 날 같아서요. 누군가에게 작은 걸 건네고 싶던 날.”


그의 눈빛이 잠깐, 커피잔 위로 스쳤다.

그 속엔 진심인지, 습관인지 알 수 없는 온기가 있었다.


그가 먼저 자리를 떴다.

문이 닫히고, 작은 종소리가 카페 안에 울려 퍼졌다.

남겨진 건 식어가는 커피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지만, 바람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녀는 천천히 잔을 들어 올렸다.

커피는 식어 있었고, 그 맛은 어딘가 낯설게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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